
저의 큰형님께서는 살아계실 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마다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실 때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동서고금, 어떤 민족이나 종교에서도 부모를 공경하는 효의 가르침이 없는 곳은 없다. 논어, 맹자 등 유교에서는 효를 만행의 근본이라 하고 효로 사람됨을 판단하기도 했다. 성경에서는 십계명 다섯 번째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면서 성경 곳곳에 효에 대한 가르침이 가득하다. 그리고 불가에서도 부모은중경이란 경을 통해 효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왜 그토록 자식에게 효를 강조하고 가르치려고 했을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며, 생존적이어서 다른 말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식의 부모 사랑은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는 데 길들여진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이기적이다. 따라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효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한 것은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효도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그 가운데 부모에게 하는 말하기가 매우 중요하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가장 듣기 좋아 하는 말은 바로 부모를 즐겁게 하는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이 이상의 좋은 말은 없다. 그리고 부모의 자식 걱정을 덜어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이 바로 효도말이다. 아침 저녁으로 부모에게 인사하고, 어디를 가거나 돌아와서 부모에게 알리는 인사말은 효도말의 기본이다.
다음은 옛날 어린 자녀에게 가르쳤던 <소학>에 나오는 자식 말하기 가르침 중 하나다.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기운을 낮추고 웃는 낯으로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말씀드려라. 만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거든 공경과 효를 다하여 기쁘게 해드린 다음에 다시 말씀드려라’고 했으며, ‘자식이 아버지에게 세 번 간해도 따르지 않으면 울면서 따르라’고 했다. 논어에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부모에게 원망하지도, 화 내는 얼굴을 하지 말라고 했다. 오늘날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부모를 대하라는 뜻이다. 부모는 자식이 불쑥 던진 말 한 마디에도 자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서운해하고 마음 아파한다. 더구나 부모가 나이 들어 몸도 마음도 약해지면 더더욱 그렇다. 부모와 자주 대화를 해 부모를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효도다.
이제 나이들어 부모를 여의고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어 보니 효도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에 왜 좀 더 일찍 부모님과 따뜻하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부모님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을 왜 그토록 하기 어려워했을까. 효도하지 못한 지난 날이 한없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임규홍 경상국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