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은 고용보험 도입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고용보험은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 등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수많은 위기 속에서 중요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축적된 방대한 고용보험 데이터는 노동시장의 변화와 세대별, 지역별 일자리 이동을 분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런 소중한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고용보험 제도 축소와 퇴행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국정감사를 준비하며 2011년부터 2024년까지 약 8370만건의 고용보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과 지역 일자리 문제, 특히 울산 동구같은 조선업 중심지역에서의 청년 이탈현상이 심각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고용노동부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조선업 위기의 정점이었던 2016년, 울산 동구의 청년 노동자들은 대부분 인근 지역의 조선소나 유사 제조업으로 이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업 노동시장에서 청년층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2015년 울산 동구에서 조선업에 종사하던 30대 초반 노동자는 약 8880명이었으나, 2024년에는 이 숫자가 2725명으로 급감했습니다. 부족한 인력은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되고 있으며, 울산 동구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약 90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울산 동구의 노동 인구 변화는 단순히 조선업 불황의 여파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청 중심의 고용 구조와 낮은 임금, 불안정한 근로 환경이 청년들에게 조선업을 외면하게 만든 주요 요인입니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는 조선업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수도권으로 이동한 많은 청년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특히 파견직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얻고 있다는 점은 대한민국 지역 일자리의 질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특히 여성 청년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여성에게 제공되는 일자리의 수와 질이 매우 부족하다는 현실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서 청년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역행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보험 확대와 사각지대 해소에 소극적일 뿐 아니라, 실업급여를 비하하는 일부 정치인의 발언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부정수급은 당연히 엄정하게 처벌하고, 막아야 하지만, 그것이 고용보험과 실업급여 정책의 전부라면 매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일 뿐 아니라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습니다.
지난 10월,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를 만나 정규직 채용 확대 요청서를 전달했습니다. 울산 동구와 같은 조선업 중심 지역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고 하청 중심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청년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대기업은 조선업 불황기에 퇴직과 임금 삭감을 받아들였던 노동자들이 연대 희생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을 기업에만 맡겨둘 수 없습니다. 정부와 지방정부,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하며 여기에 고용보험 제도가 이를 지원하는 핵심 도구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현행 ‘고용위기지역 지정’ 제도는 단기적인 고용지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지역의 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 청년 이동 패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농식품부의 ‘농촌소멸 대응 추진전략’ 등은 법 개정과 연구 결과를 반영해 지역 균형 발전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사례를 참고해, 고용보험 제도가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지역발전과 청년의 미래를 담보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지역 경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이며, 국가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과제입니다. 정부와 기업, 지역사회의 책임이 함께 모일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용보험 도입 30주년을 맞아, 이 제도가 단순히 실업자를 위한 제도를 넘어 청년과 지역을 살리는 도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의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청년과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때, 조선업과 같은 기간산업은 물론 지역 경제 전체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청년과 지역,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김태선 국회의원(울산 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