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궁전, 베르사유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루이 14세가 17세기에 건설한 왕궁이다. 그는 위그노 전쟁으로 시작된 부르봉 왕조의 후예다. 위그노 전쟁은 중세를 지탱해 온 교회와 봉건영주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를 원하는 시민계급의 협력을 얻어 왕은 절대군주로서 그 입지를 강화해 갔다. 이는 중세의 쇠락이며, 이른바 절대왕정(絶對王政. absolute monarchy)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루이 14세가 전성기를 이루었던 17세기에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왕의 절대적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해도 될만한 업적을 쟁취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절대권력을 대내외에 표현할 수 있는 기념적 사업을 구상했다. 그것은 새로운 왕궁을 짓는 일이었다.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20여㎞ 떨어진 베르사유를 왕궁터로 정했다.
그곳에서 그의 강력한 권력과 위상을 상징할 만한 새로운 왕궁을 구상했다. 규모로 보나 고급성으로 보나 전무후무한 왕궁이어야 했다. 그곳은 귀족이나 성직자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만인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으며, 숭배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어야 했다. 그 계획에 따라 왕궁만이 아니라 왕정 기관, 귀족들의 아파트 단지, 거대한 공원과 정원을 갖춘 도시 규모의 왕궁지구가 건설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입주하는 귀족들에게 궁정 예식을 강요함으로써 행동양식을 통제하고 지배력을 강화했다.
베르사유의 규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산의 면적만 해도 1000 ㏊가 넘는다. 보존을 위해 설정된 완충구역을 합치면 1만㏊가 넘는 면적이다. 당시까지 건설된 어떤 궁전보다도 더 큰 규모라 할 수 있다. 경복궁의 전체 부지 면적이 43㏊ 정도이니, 베르사유 궁전 부지에만 20개의 경복궁을 배치해도 여유가 있다. 실상 궁전이라기보다 도시로 보아야 한다.
왕궁으로 진입하는 앞마당은 마치 천안문 광장처럼 광활하다. 하지만 시각적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산만하고 헤벌어진 느낌이다. 루이 14세의 기마상이 광장의 한 가운데에 보란 듯이 서 있다. 광장의 끝에서 무대의 뒷 배경처럼 궁전의 본관이 파사드를 드러낸다. 가장 중요한 건물을 아무런 과정도 없이 갑자기 마주하는 격이다.

건물의 형상이나 구성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ㄷ자형의 본관 건물 양 옆에 두 개의 중정을 갖는 직사각형 부속건물을 날개처럼 배치했을 뿐이다. 본관 양 날개 부분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전을 연상시킨다. 하층부에는 석조벽과 아치형 개구부를 두어 토대처럼 만들었지만, 상층부에는 웅장한 석조기둥을 세워 현관부(portico)처럼 구성했고, 그 위에 삼각형 박공(pediment)을 설치해 신전처럼 보이게 했다. 건물 형태는 단조롭지만, 번쩍이는 금빛 바로크 장식이 그 단조로움을 덮어 준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호화찬란함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건축이다.
호사의 극치는 내부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을 가진 인물의 위상과 호화로운 생활양식을 노골적으로 과시한다. 최고급 대리석으로 마감되고, 타피스트리나 금은의 부조들로 장식하고, 조각과 벽화로 벽면을 채웠다. 천정에는 천사와 신들이 노니는 천상 세계를 회화로 표현했다. 바로크의 현란함이 극에 달한 공간이다. 그러나 난방이 거의 되지 않아 포도주병이 얼어 터질 정도였고, 위생 설비도 구비되지 않아 이동식 변기를 사용해야 했으며, 생활용수의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과시용 무대였던 셈이다.
루이 14세의 과시욕과 자기애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곳이 바로 ‘거울의 방’이다. 이 방은 길이 73m, 폭 10여 m에 이르는 대규모 홀이다. 왕족의 결혼이나 사신의 접견, 국제회의, 연회에 사용된 의식용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방으로 들어서면 크리스털과 황금 조각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또한 볼트 천정 전체를 가득 메운 프레스코화는 신격화된 영웅담을 서사로 표현했다. 거울은 나르시시즘의 상징이다. 루이 14세도 거울에 투영된 화려한 공간과 그 속에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늘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황당함은 궁전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정원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산보하거나 소요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기하학적 패턴의 조경이 2.6㎞에 이르고 그 끝에서 다시 인공운하가 이어진다. 인공운하의 끝은 소실점으로 모여 경계를 무한으로 연장한다. 뱃놀이 정도가 아니라 모의 해전을 할 수 있는 규모의 운하다. 공중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결코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스케일이다.
베르사유 정원은 프랑스식 바로크 정원을 대표한다. 세상의 온갖 정원 요소는 모두 가져다 꾸몄지만, 좌우 대칭의 기하학적 패턴은 동어반복의 지루함을 자아낸다. 그 중의 압권은 자수형 화단(perter)이다. 마치 양탄자에 수를 놓듯이 낮은 관목들을 다듬어 마당에 기하학적 문양을 만든 것이다. 식물의 본성을 훼손하는 것을 지극히 꺼리는 동양인의 눈으로 보면, 나무나 화초에 대한 폭력이다. 결코 오래 지켜볼 것이 못된다.
절대군주의 오만한 과시는 베르사유에서 멈추지 않았다. 절대 왕정이라는 시대 조류를 타고 유럽의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유럽 각국에서 등장한 절대 군주들이 갈망하는 왕궁의 이상적 모델이었다. 자고로 호화로운 궁전을 지었던 군주들이 행복하게 삶을 마감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루이 14세의 허망한 과시욕과 지배욕에서 비롯된 재정난과 정치적 혼란은 후계자에게 단두대의 비운을 물려주는 단초가 되었다.
이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넘었다. 나의 여행기는 여기에서 잠시 쉬어가려 한다. 그렇다고 내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동안 길 벗으로 동행해 준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언젠가 낯선 여행길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