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문학 3대 비극과 운명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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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영문학 3대 비극과 운명의 대화
  • 경상일보
  • 승인 2025.01.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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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비극은 인간의 생사와 운명을 사색하게 하는 거울과 같다. 영문학에서 대표적인 비극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있다. 작품은 운명과 맞서야 하는 인간이 겪는 갈등, 복수심, 집착과 파멸 등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를 갖게 만든다. 각기 다른 배경과 인물로서 본성과 운명의 불가피성을 드러내며, 그 안에서 선택과 책임, 사랑과 증오, 욕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인생극(人生劇)을 그려낸다.

첫 번째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권력과 가족,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주인공 리어왕은 자신의 왕국을 세 딸에게 분할 해주며 권력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탐욕과 배신에 직면한다. 두 딸인 고너릴과 리건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권력을 탐하였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만이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다. 왕은 이러한 애정을 깨닫기까지 고난과 광기를 경험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작품은 오판과 권력에 대한 집착이 불러오는 비운을 묘사한다. 왕은 자신의 선택이 행로(行路)를 바꿀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의 오만함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한다.

작품에서 인간은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하고 책임을 치러야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왕의 실수는 권력의 덧없음과 관계의 진정성을 잃었을 때 발생하는 불운한 상황의 전형이다. 작가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할 때 비로소 운명과 화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 번째 멜빌의 <모비 딕>은 고래잡이배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허브가 흰고래 모비 딕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발생한 비극이다. 그는 한때 자신을 공격해 다리를 앗아간 모비 딕을 추적하는 데 인생을 걸지만, 고래와 최후의 싸움에서 배와 승무원 모두를 잃고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생존자는 소설의 주인공인 이스마엘이다.

작품은 인간의 집착이 운명을 어떻게 조종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에이허브의 복수심은 운명을 지배하려는 의지로 표출되지만, 자연의 거대한 위력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모비 딕은 단순한 고래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자연과 운명의 상징이다. 작가는 지나친 도전과 교만이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하지만 선장은 상황에 굴복하기보다는 끝까지 부딪히며 신념을 관철한다. 이것은 투쟁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인간의 존재 의의를 되묻게 하는 높은 철학적 질문을 품게 한다.

세 번째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비극적 사랑과 복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아였던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집에 입양되지만, 신분 차이로 인해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캐서린은 돈과 신분을 선택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히스클리프는 이를 배신으로 여기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는 부와 권력을 얻었지만, 사랑을 잃은 상처는 그를 파멸로 이끈다.

작품은 운명이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집착, 증오와 상처가 얽히며 만들어지는 복합적 단계임을 나타낸다. 히스클리프는 운명을 의지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복수를 실행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해치는 감정에 사로잡혀 파괴적인 결말을 맞는다. 작가는 사랑과 증오가 인생에 미치는 파동을 보여주며, 인간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자신을 잃었다가 되찾는지를 탐구한다.

세 작품은 운명에 대한 공통적인 질문을 던진다. <리어왕>에서는 권력과 사랑의 오판이 운명을 좌우하고, <모비 딕>에서는 복수심과 집착이 운명을 몰락으로 이끌며, <폭풍의 언덕>에서는 사랑과 증오가 운명을 뒤흔든다.

셰익스피어는 운명을 선택과 책임의 연속으로 바라보았고, 멜빌은 운명과 인간의 의지가 충돌하는 과정을 상징적 항해로 그려냈다. 브론테는 운명이 감정의 움직임에 의해 바뀔 수 있음을 역설했다. 작품에서 운명이란 새롭게 창조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는 철학적 통찰을 전해준다. 인생의 항로는 앞에 펼쳐진 거대한 파도와 같다. 그 파도를 피할 수는 없지만, 방향을 잡고자 하는 의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비극은 바람에 날리는 한 장의 낙엽이다. 지나간 시간은 가슴을 적실 뿐이다. 낙엽을 보지 않고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은 없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외부원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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