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병원에 독감 등 호흡기질환 환자가 너무나도 많다. 어느 병원이나 마찬가지다. 지난주 정도부터 폭증을 했고, 현재는 정점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선 독감, 코로나19, RSV, 노로바이러스가 함께 돌아 4개 전염병이 한꺼번에 유행한다는 뜻의 ‘쿼드데믹’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중국에서도 호흡기 전염병이 폭증하고 있다는 외신이 나온다. 둘다 한국과 교류가 많은 나라인만큼 질병이 오고갈 확률도 크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듯 하다. 1~2년전 보다 유행이 심하다고들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 병원에서 느끼는 체감도 확실히 이번 유행은 작년, 재작년보다도 그 정도가 강한 것으로 느껴진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인구 집단의 질병 발병과 그 흐름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원인, 경과 등을 연구해 예방까지 신경을 쓰는 의학분야를 ‘예방의학’이라고 한다. 사실 병원에서 환자로 만날 수 있는 의료분야는 아니지만, 코로나 시기 때 흐름 예측을 위해 예방의학전문의들이 언론에 간간히 노출되었기에 익숙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사회 전반적 현상의 통계들을 많이 다루기에 의료정책 등에도 그들의 연구나 목소리가 반영되기도 한다.
현재 상황에 대해 예방의학 전문의들의 의견을 살펴보면 각자 이견은 조금씩 있지만, 이번 유행이 지난 몇년간보다 더 크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가 판데믹으로 선포되어 강력한 방역정책이 시행된게 2020년부터 2022년까지다. 이 시기엔 방역정책이 강했기에 코로나19 유행을 제외하면 다른 인플루엔자 등이 특별히 눈에 띄게 유행하지 않았다. 판데믹이 해제된 이후인 2022년부터는 기타 호흡기 감염병도 유행을 했으나, 2020년 이전의 패턴인 겨울철 유행 + 봄 직전 소규모 유행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일어났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들어 다시 해당 패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면역력인데, 코로나19를 제외한 다른 호흡기 감염병들에 대한 면역력은 지난 5년여간 많이 떨어져 있기에 향후 몇년간은 이번처럼 감염의 규모가 클 수 밖에 없다는 예측이 있다. 암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고령층에서는 이전 코로나19만큼은 아니어도 호흡기 감염병은 위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며 변이로 인한 신종 감염병 위험도 항상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매년 호흡기 감염병에 주의하고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경쓰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들에 정확히 대비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는 정부의 정책 중 하나가 있다. 신종 감염병에 대비한 긴급치료병상 사업으로, 정부에서 만약 신종 감염병이 유행한다면 특정감염병원 외에 지역의 각 종합병원들이 나눠서 환자를 수용할 수 있도록 넓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미 1년여 전에도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데 해당 병실 시설비용의 일부가 지원되는 조건으로,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 외에 지역의 다른 병원들에서도 함께 지원을 신청한 상태다. 음압시설이 갖춰진 이 병실들이 완성되면 원 취지와는 살짝 다르더라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고위험군 환자들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 병동은 아직 울산 내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사업에 대한 심사, 진행 절차가 많고 속도가 나질 않고 있기에 그렇다. 도면 승인을 비롯한 전반적인 사업 진행과정 절차가 만만치 않기에 공간을 마련하고 1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공사 시작을 하지 못했다. 필자가 일하는 병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병원들이 그러하며, 과정 중 해당사업을 포기한 병원도 있다. 국가사업이니 꼼꼼하게 보려 하기 때문이라고 수긍하고 있지만, 병원 종사자 입장에서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는 그냥 대처하게 됐지만, 다음 유행은 긴급치료병상이 갖춰진 상태에서 좀더 든든하게 맞이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