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대왕암케이블카,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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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대왕암케이블카,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
  • 경상일보
  • 승인 2025.01.2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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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채윤 울산 동구의원

1883년 프랑스 소설가 빌리에 드릴라당이 쓴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유대인 랍비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했다는 혐의로 화형이 선고돼 지하 감옥에 갇혀 고문당한다. 화형식 전날 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틈을 타 탈옥해 자유를 느끼려는 순간 랍비 앞에는 재판관이 나타난다. 랍비는 희망에 부풀어 망가진 몸으로 힘들게 탈옥했지만 재판관은 일부러 문을 잠그지 않았던 것이었다. 희망이란 이름으로 가해진 마지막 고문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가수이자 연예기획자인 박진영이 자서전인 ‘미안해’에서 언급하면서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유명해졌다. 남녀사이에 대해 설명했던 이 단어는 이후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대중화됐다.

울산 동구를 희망고문하고 있는 것은 전액 민간 투자 사업으로 추진 중인 ‘대왕암공원해상케이블카’다. 50년 넘게 이어온 조선업도시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육성 중인 동구 관광산업의 핵심사업 중에 하나다. 울산시와 시행사가 업무 협약을 체결했던 2021년 당시 계획은 2022년 2월 착공이 목표였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착공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공사비용이 상승했고, 시행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어려워진 것이 사업 지연의 이유다. 올해가 실시계획상 완공 기한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전망이 좋지 않아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민간투자는 정부예산의 부족을 보완해 사회기반시설을 조기에 확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정상황이 열악한 동구 입장에서는 민간 투자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민간 투자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울산만 보더라도 2018년 준공 예정이었던 울주군의 KTX울산역복합환승센터, 2019년 준공예정이었던 중구 혁신도시의 신세계백화점은 수년째 공사가 미뤄지면서 주민들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사업이 계속 미뤄지면서 대왕암공원해상케이블카 사업 자체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케이블카가 이미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지역 케이블카의 원조격인 통영케이블카는 2008년 개통 이후 이용객이 꾸준히 늘어 2017년 141만명을 유치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용객이 가파르게 줄고 있다. 2023년 이용객은 42만여 명으로 줄었고, 39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민간이 운영 중인 곳도 마찬가지다. 2020년 7월 개통한 경북 울진 왕피천케이블카는 경영난으로 2023년에 3개월간 운영을 중단했고, 2021년 9월 개통한 전남 해남·진도 명량해상케이블카는 개장 당시 연 100만명 유치를 목표했지만 3년동안 연 이용객이 20만명을 넘지 못해 누적 적자만 14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케이블카 운영방식에 기인한다. 한 사람만 이용한다고 해도 전체 시설을 다 돌려야 해 최소한의 이용객을 채우지 못하면 적자를 감내하고 운영해야 하는 구조다.

그래서 관광 관련 전문가들은 케이블카 사업은 서울의 남산 케이블카처럼 지속적으로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도시에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일회성 이용을 통해서라도 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동구 대왕암공원과 일산해수욕장 일대, 울주군 영남알프스 일대에 대한 ‘해양산악레저특구’ 지정이 추진되는 등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동구가 성공적인 관광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케이블카 사업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타 지자체의 실패 사례를 재검토해 성공 가능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과감한 단념이 희망고문을 없애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임채윤 울산 동구의원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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