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이 무너졌다’는 문구는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는 경호처와 강행하려는 공수처간의 충돌사태에 대한, ‘법원서 집단 난동, 법이 짓밟혔다’는 문구는 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폭력사태에 대한 각 신문 제목이다. 연일 벌어지는 ‘석방과 파면’ 촉구 집회 시위는 법치주의의 혼란과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란죄 수사권이 공수처에 있는지와 탄핵 심판중인 현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의 시비를 둘러싼 여야 지지 세력간의 충돌이다. 대통령은 공수처의 수사대상이지만 내란죄의 수사권은 경찰에 있다. 처음부터 경찰이 내란죄 수사를 했다면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계엄사태 초기에 경찰뿐 아니라 검찰과 공수처 등이 내란죄 수사에 뛰어들었다. 검찰은 경찰청장 등이 내란 공범이어서 이에 대한 수사를 하면서 관련 사건으로 다른 피의자도 수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수처는 현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죄 수사의 관련 범죄로서 내란죄를 수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소위 ‘검수완박’의 수사권 조정의 결과로 수사권한에 관해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 법치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지만 현직 대통령은 내란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소추당하지 않으므로, 공수처가 현재 바로 소추가 불가능한 직권남용죄를 수사하면서 현 대통령에 대한 관련 사건인 내란죄를 수사하는 것이 맞는지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법치주의는 법 제도의 내용은 물론 그 운영이 바로 돼야 지켜질 수 있다. 법치주의의 위기는 여러 곳에서 온다. 권한 남용이나 불공정한 법 집행,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법치주의의 위기를 부른다. 법의 효력이 상실되거나 무시되는 경우 혼란과 불안이 발생하고, 법의 불평등한 집행은 정의와 평등을 훼손한다. 법치주의는 법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법 자체도 정의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져야 제대로 작동한다.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의 집행은 적법절차에 따르면 된다. 물리력이나 폭력으로 집행을 가로막을 수 없다. 독립된 사법부에 의해 발부된 영장의 집행에 저항하는 것은 공무집행방해다. 더구나 영장에 불만이 있다고 법원을 공격하는 것은 중범죄다. 하지만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가 수사권한이 없는 기관의 수사이므로 영장도 불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니 혼란에 생기는 것이다. 법원으로서도 법의 적용과 집행에 불신이 없도록 절제와 신중함이 요구된다.
입법권의 독주나 남용은 법치주의의 위기를 낳는다. 계엄 선포의 빌미를 제공한 다수 야당에 의한 특정 개인을 위한 위인설법이나 여당이 반대하는 무리한 입법 독주 등은 그동안 입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한 정책 결정의 과오와 부도덕 등이 징계사유에 불과함에도 공직자의 직무 수행의 정지를 목적으로 탄핵을 남발한 사태 등도 계속되었다. 다수당에 의한 예산의 일방적 삭감도 마찬가지다.
모든 공권력은 절제된 행사로 법치주의에 합치될 때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계엄 선포는 절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오늘날의 법치주의는 법률에 의거한 공권력 행사라는 의미를 넘어 법률의 목적과 내용도 정의에 부합하는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법치주의는 인의 지배나 힘의 지배가 아니다. 법치주의는 공권력의 행사가 법률에 적합하도록 행해지는 것을 말하지만, 실질적 내용이 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실질적 평등, 법적 안정성의 유지와 정의의 실현 등에 복무해야 한다. 주어진 제도적 권한을 극단적 수준으로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규범으로 되고, 그 규범을 준수할 때에 법치주의가 실현된다. 어떤 권력이든 합법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제도적 특권을 남용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기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