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구치소 독방에서 설을 맞이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견딜 만하다”고 했다. 옳든 그르던 대통령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마음이 불편한 긴 명절이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정국 이전에는 총선 참패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는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었다. 계엄 선포 후 탄핵이 의결되고 내란혐의로 구속·기소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덩달아 여당의 지지율도 급등하는 의외의 태세전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지자들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死諸葛走生仲達)’거나, 대통령을 남이흥 장군에 비견하기도 한다.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남이 장군의 의령 남씨 후손인 남이흥 장군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남이흥은 정묘호란때 안주성에서 3만의 후금군을 맞이해 약 3000의 병사로 대적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자,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지 않고, 성안의 화약고에 불을 질러 적들과 함께 자폭하는 애국충절의 길을 택했다. 대통령이 처한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비유가 나도는 것을 보면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계엄 선포가 너무나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일이라 처음에는 대다수가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점차로 29회에 달하는 감사원장을 비롯한 국가 중요 기관의 탄핵 등 야당의 지나친 정치공세가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였다는 인식의 확산과 계엄 정국을 수습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 사법 엘리트들의 조직 이기주의로 비치는 비애국적인 행동이 민심 요동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정치 무관심층인 2030세대들이 합세하고, 중립적이던 인기 국사 강사가 참전해 돌풍을 일으키는 등 윤 대통령의 정치적 일탈에 대한 일방적인 단죄의 분위기가 양 정치 세력의 진영대결을 넘어서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 사유화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51%의 사람이 나머지 49%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는 제도’라고 토로하며, 자유민주주의의 안착을 위해서는 권력을 위임받은 지배 엘리트의 통합 애국심과 국민의 권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탄핵이 의결돼 모두가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마저 야당 단독으로 탄핵을 감행한 것은 국가의 안위보다 일개 정당의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는 비애국적인 모습으로 국민에게 포착됐다. 공수처 검사들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 후에 쇠고기 안주에 와인으로 건배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공수처는 대통령의 내란혐의 수사에 대한 직무관할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난폭하게 주도해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는 성과를 올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참담한 마음으로 나라의 안위를 고뇌해야 할 상황이지 자신들의 수사 성과를 와인과 쇠고기로 자축할 일은 아니었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유를 ‘피의자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꼴랑 열다섯 자로 적시한 판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국민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분열과 혼란을 최소화해야 함에도 무성의하고 오만한 태도는 판결의 신뢰성을 의심받게 돼 격분한 군중들에 의해 법원이 습격당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작금의 민심 요동은 국가 지배 엘리트들의 비애국적인 모습이 부채질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에 대한 법적인 절차는 많은 논란을 남긴 가운데 내란혐의에 대한 형사재판과 탄핵 심판으로 압축됐다. 국가적 혼란과 분열의 수습책임이 법원의 법대 위에 놓이게 된 셈이다. 벌써 일부 헌법재판관의 지나친 이념 편향 등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 난감한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파면 후에, 형사재판에서 내란혐의가 무죄로 될 경우다. 법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과연 이를 국민이 용인하고 승복할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더 깊은 혼란의 수렁으로 빠질 것이 분명하다. 뜻하지 않게 무거운 짐을 진 재판관들은 언제든지 태세전환의 유연한 자세로 통합의 애국심을 발휘해 줄 것을 국민은 주시하고 있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