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찬의 건강지평(48)]벚꽃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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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찬의 건강지평(48)]벚꽃 엔딩
  • 경상일보
  • 승인 2020.04.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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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벚꽃 엔딩이다. 지는 것은 모두 슬픔을 지녔다. 벚꽃은 질 때 마지막 한 잎까지 봄바람에 흩날린다. 이때가 벚꽃의 정점이다. 덧없는 것은 정점에서 흩날리는 꽃잎이 아니라 노을에 반짝이는 텅 빈 꽃받침이다. 빨간 꽃받침이 툭 툭 떨어지고 나서야 벚꽃의 흔적은 온전히 사라진다. 한없는 설렘이 꽃으로 피어나 정점에서 흩날릴 때 물러가는 봄은 새처럼 울고, 연두는 무심히 신록을 향해 간다. 낙화(洛花)의 슬픔은 꽃이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다. 꽃이 지고 꽃이 핀다. 물러가는 슬픔의 빈자리에 또 다른 슬픔이 시간을 따라 밀려오며 슬픔은 영원한 것인데, 이 세상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지 않는 한 슬픔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슬픔에 대한 위대한 앎은 기쁨의 진가를 이해하는 토대가 되며 그 결과 기쁨을 강렬하게 만든다(존 밀턴). 슬픔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슬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애착의 형성이다. 상실의 두려움이 없다면 강한 애정을 가질 수 없다. 사랑이 깊고 넓어지려면 슬픔이 개재되어야 한다. 내게 속한 것을 꽉 붙들도록 만드는 것은 상실의 두려움이다. 슬픔에 대한 예상이 없다면 감정적인 애착은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의 상실이 끔찍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지키고자 한다. 슬픔은 사랑을 보호적으로 만든다.

비구름이 없고 화창한 날씨만 계속된다면 긴 장마 뒤의 맑고 눈부신 태양을 자각할 수 있을까. 긴 겨울이 없었다면 봄날의 감정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삶은 슬픔을 내포한다. 봄날의 슬픔은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뿐만 아니라 슬픔은 신체적인 고통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을 성찰하게 한다. 그 성찰을 토대로 삶을 바꾸는 현명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막아주며 어리석은 행동을 예방한다. 슬픔을 종식시키면,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해 애석해 하지 않게 되면 우리는 곧 서로를, 세상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앤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민음사 2019).

벚꽃 엔딩이다. 강(江)이 그저 흘러가는 물이듯, 꽃도 무상(無常)한 무엇일 것이지만 그 도(道)는 요원하여 꽃은 여전히 아름답고 지는 꽃은 슬픔이다. 벚꽃이 진 자리에 이제는 찬란히 모란이 피고 있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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