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Good.’ 이 표현은 지난해 35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 지을 즈음에 내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면서 ‘so far so(지금까지는)’를 덧붙여서 내뱉은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 인생은 즐길만하고 하루하루 땀 흘려 최선을 다할 때 그만큼 가치가 더해진다. 그런데 2주 전 필리핀과 베트남에서 ‘멋진 생활’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올해 ‘글로컬 대학’ 선정을 목표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울산과학대학과 연암공대의 해외 출장에 동행하면서 LG전자 필리핀 판매법인, 하노이 연구법인과 하이퐁 생산법인 곳곳에서 눈에 띄는 큼지막하게 쓰인 회사의 모토였다. 연암공과대는 구인회 초대 회장의 고향인 진주에 LG전자가 출연한 IT분야 전문대학교이다. 작년에 울산과학대학교와 함께 ‘글로컬대학30’의 예비 대상자로 지정됐지만, 최종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올해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 만큼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및 대학 간 격차 등 위기 극복을 위해 비수도권 대학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차원에서 글로컬 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단계적으로 전국 30개 대학을 선정해 학교당 5년간 약 1000억원을 지원한다. 범부처와 지자체 투자와 ‘지방대학 육성법’상 행정적, 재정적 우대도 기대할 수 있다. 2023년엔 울산대학교가 당당하게 선정돼, 지난 1월15일 Ubicam(유비캠) 1호 캠퍼스가 HD현대중공업 내 뿌리아카데미관에서 개소됐다. 앞으로 총 7개의 캠퍼스가 구축돼 ‘어디서건(Ubiquitous)’ ‘공부(Campus)’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세계의 산업 수도인 울산 전역에서 현장 중심 교육과 기업 재직자, 학생, 외국인, 시민들에게 AI, DX(디지털 혁신), 기술창업, 시민 평생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비철금속, 원자력 산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인 산업기지이고, 수소전지, 이차전지와 부유식 해상풍력발전 분야에서도 미래가 기대된다. 아울러, 분산에너지활성화법이 시행됨으로써 낮은 전기료와 그린에너지를 찾아 바이오, 데이터, 반도체 기업들의 울산행 러쉬도 예상된다.
설명절을 앞두고 이뤄진 동남아 해외 출장을 진두지휘한 울산과학대 조홍래 총장은 “이번엔 울산과학대와 연암공대 차례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면서 “한국 내 최고의 두 전문대가 만나 글로컬 연합대학으로서 ‘동남권 제조 인력 양성과 권역 상생’의 글로벌 모델을 성공시킬 것이고, 울산과 경남을 넘어 전국으로 확신시키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동남권 산업지대 내 제조업 인력의 약 80%가 전문대졸 이하 이공계열 전공자임에도 지난 10년간 노동 인력 부족 현상은 여전하고 전문대 공학계열 학생이 51%나 감소한 것이 현실이다. 현장실무 인력 양성과 권역 내 취업을 통해 중견간부로 키워 청년의 이탈을 억제하고 울산 정주 효과 기대와 외국인 전문인력의 유입 지원으로 생산인구 감소를 막겠다는 일석이조를 꿈꾸고 있다. SimFactory(가상현실과 연계된 실습 병행 생산공장), 메타버스 플랫폼(원거리 대학 간 시공간 제약 극복), 디지털 트윈(가상공간 실습 교육)을 통해 연합대학 형 교육혁신을 이루고 AI/DX 팩토리 센터, 이차전지 팩토리 등을 새로이 구축해 지속 가능한 산학협력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LG전자 3개 법인 방문, 양 대학의 산업 맞춤형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글로벌 캠퍼스를 구축하기 위한 필리핀 마카티대학, 라살대학 및 파티마 대학 간 MOU 체결, 울산과학대(UC)-연암공대(YC)와 하노이 Dai Nam대학 및 FPT대학, 아울러 LG전자 하이퐁 생산법인간 3자 MOU 체결 등 의미 있는 일정들이 연이었다. 강행군이었지만 글로컬 대학 선정을 기필코 이루겠다는 진심이었기에 다들 지치지 않았고, 함께 하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에 큰 박수를 보냈다.
양 대학은 국내외 자매대학에 ‘UC&YC 글로컬 반’을 만들어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을 도모하고 국내 학생들의 인턴 실습 및 재학 중 현장 직무연수를 지난해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해외 파트너 대학들은 한국 대기업 산하 연합대학과의 협력 기대감으로 적극성을 보였다. 여름쯤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 흐뭇한 가운데 귀국편 비행기에 올랐다.
그간 미뤄 둔 <군주론(IL Principe)>을 읽었는데 16세기 초반 이탈리아 사상가인 마키아벨리가 르네상스 당대 명문 가문인 메디치가의 로렌초 공작에게 헌정한 책이다. 필자의 한 친구는 일요일마다 시민들과 함께 수영하는 마루셀루 포르투갈 대통령과 한국대사 관저 초청에 흔쾌히 참석하고 피아노 연주까지 손수 해준 팔 슈미트 헝가리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는, “우리 대통령도 임기 동안 평화롭고 안정된 일상을 보낼 수 있고 퇴임 후에는 존중받는 정치원로로서 품격을 갖춘 여유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본 듯한 반응을 보였었다.

절대군주 시대의 군주상은 현 민주주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주는 다수집단의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는 일 만큼은 피해야 하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부터 미움받는 일은 피해야 한다. 경멸받는 것은 더더욱 피하라”는 조언은 가슴에 와 닿는다. “군주의 최대 실수는 아첨꾼들을 신임하는 것”이라는 조언도 마찬가지다. 혹 우리 지도자들이 “군주는 유능한 거짓말쟁이여야” 한다거나 “선만 가지고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는 절대군주 시대의 격언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철민 울산대 교수 전 울산시 국제관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