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선포 이후 두 달이 지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초기에는 엄청난 혼란이 있었고 지금도 그 여파는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작동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마무리를 위한 법적 절차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심정은 여전히 착잡하고 조마조마하다.
탄핵심판 재판정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이 공개되면서 계엄의 해석을 둘러싸고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헌법을 유린한 내란이 분명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강조하며 ‘계몽령’이란 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계엄초기에 관련자들이 했던 진술의 결이 다소 달라지면서 계엄 전개 과정의 실체에 대한 진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누가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혼란스럽다.
사람들이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어느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3세기 로마에서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열렸을 때 군중 가운데 서 있던 평신도 파비아노의 머리 위에 비둘기가 내려와 앉았다. 시민들은 이 장면을 성령이 임한 것으로 해석하고 그를 교황으로 추대했다.
미토스(mythos), 즉 신화적 해석이다. 미토스는 상황을 묘사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언어로 구성된다. 치밀하거나 정확할 필요가 없고, 대신 그럴듯하면 된다. 반면 이성, 논리 등으로 해석되는 로고스(logos)는 논리적 인식을 통해 합리적인 증명을 함으로써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파비아노 교황의 사례를 로고스로 해석하면, 비둘기가 날아가다가 우연히 또는 그의 머리 위해 어떤 빵 부스러기가 있어서 그것을 먹으려고 앉은 것으로 볼 것이다.
우리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계엄의 단초가 되었다는 부정선거 주장도 미토스와 유사하다. 몇 가지 팩트 사이에 그럴 듯한 추론을 덧 붙여 일부 유튜버들이 부정선거라는 일종의 신화를 만들고 정치인들이 이에 편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로고스 관점에서 보면, 만일 부정선거를 주장하려면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확한 증거를 통해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단순한 추론과 가정만으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선거만이 아니다. 계엄의 필요성과 탄핵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무리한 탄핵과 무자비한 예산삭감으로 국정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계엄이라는 비상수단이 불가피했다는 주장과, 군대를 동원한 조치는 내란이 분명하므로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 모두 미토스적 해석이다. 이성과 논리는 사라지고 일방적 주장과 과장된 신화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토스는 신성함 또는 종교적 절대성에서 비롯됐다면 지금은 유튜브의 AI 알고리즘에 의해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매일 비슷한 내용만을 접하다 보면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기만의 미토스에 사로잡히게 된다. 정치세력은 이를 더욱 강화하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한다. 사실이 불분명한 사안에 대해서 명확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허위에 가까운 사실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서로 수만 군중을 모아 놓고 입증되지도 않은 내용을 그럴듯한 ‘신화’로 포장해 선동하고 있다. 결국 양 정치세력은 계엄에 대한 미토스적 해석을 통해 국민 분열을 부채질하고 우리사회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
물론 정치의 영역에는 미토스가 필요하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과 신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번 계엄 과정에 대한 판단과 해석에서는 철저하게 로고스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더욱이 이미 법적 절차에 돌입해 있고 속속 증언들과 자료들이 드러나면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정치세력은 더 이상 허황된 미토스로 시민들을 차가운 광장으로 이끌지 말고 이성을 회복하기 바란다. 시민들도 정치인들이나 유튜버들이 던지는 미토스에 현혹되지 말고, 이성적 논의가 될 수 있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으면 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기막힌 상황이지만, 이의 해결을 3세기 로마식으로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