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람을 쓰려거든 믿고 맡겨라
상태바
[기자수첩]사람을 쓰려거든 믿고 맡겨라
  • 신동섭 기자
  • 승인 2025.02.11 0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동섭 사회문화부 기자

몇 년 전 만 하더라도 먼 나라 이야기로 들렸던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목전에 두면서, 제2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방편으로 노인일자리 사업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울산 역시 2~3년 안에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된다. 울산시는 올해에만 747억원의 예산을 들여 1만7000여 개의 노인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노인일자리 트렌드도 빠른 속도로 변화 중이다. 최근 들어 환경 미화 등 1차원적인 공익형 일자리 대신 베이비붐 세대의 다양한 능력을 활용하는 시장형 일자리 사업이 부각되고 있다. 이는 공익형 일자리 특성상 3개를 만들면 1개조차 살아남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에 부합하듯 울산에서도 지난 4일 남구 장생포웰리키즈랜드 5층에 전국 최초로 노인들이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브리즈’가 문을 열었다. 브리즈는 요식업 경력과 관련 자격증을 지닌, 환갑의 나이를 넘긴 20명의 종사자가 ‘익숙한 맛을 착한 가격에, 건강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방침으로 운영된다. 이를 위해 종사자들이 육수, 소스, 피클 등을 수제로 제작하고 고기도 직접 두들겨 육질을 연하게 만들어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기본이자 추천 메뉴인 경양식 돈가스는 가격 대비 나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었다. 손님들의 평가도 좋았다. 점심 시간대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여서, 돌아가는 손님도 속출했다.

하지만 오픈 초기라 한계도 명확했다. 테이블 수 부족, 대기 손님 공간 미확보뿐만 아니라 종사자들의 미숙한 스킬·숙련도를 고려하지 않은 다양한 메뉴로 부엌을 오가는 종사자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때때로 보였다. 테이블 회전율 저조도 눈에 띄었다.

브리즈는 사업 조성단계부터 주말 일평균 500~600명이 이용하는 장생포웰리키즈랜드 이용자들이 인근에서 이용할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 빵,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에 착안해 문을 열었다. 영유아를 동반한 가족 단위 장생포 관광객이 이용할 만한 식당이 인근에 없다는 점 등을 고려했고, 적정한 가격에 돈가스와 피자, 파스타, 김밥 등의 메뉴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업 구상 및 착수 단계에는 합격점을 줄 수 있어 보인다. 반면 실제 일하는 종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양식과 분식을 아우르는 메뉴로 전문화가 힘들어 메뉴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윗선의 요구, 기획 단계의 목적 때문에 어느 하나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종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부품 역할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인일자리 사업의 실패 책임을 지기 싫은 행정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장형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장을 끌어 나가는 종사자들에게 권한을 일정 부분 위임하는 경영 전략도 필요해 보인다.

신동섭 사회문화부 기자 shingiza@ksilbo.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산업수도 울산, 사통팔달 물류도시로 도약하자]꽉 막힌 물류에 숨통을
  • 대형 개발로 울산 해양관광 재도약 모색
  • KTX역세권 복합특화단지, 보상절차·도로 조성 본격화
  • 신입공채 돌연 중단…투자 외 지출 줄이고…생산직 권고사직…허리띠 졸라매는 울산 석유화학업계
  • 아마존·SK, 7조규모 AI데이터센터 울산에
  • 울산, 75세이상 버스 무료 교통카드 발급 순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