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창원·마산·진해가 ‘통합 창원시’로 출범했다. 35년 전만 해도 소규모 군사도시였던 창원은 기계공업 계획도시로 지정된 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일제강점기부터 경남의 대표 항구도시였던 마산을 제치고 경남 제1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대우, LG, 현대 등 대기업의 이전과 함께 산업과 주거가 균형 잡힌 자족형 도시를 목표로 개발된 창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상업지역인 상남지구를 성장시키며, 젊은 직장인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는 지역 경제 활성화뿐 아니라 대도시로의 인구 유출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흐름은 2021년 크래프톤의 성수동 이마트 본사 부지 매입에서도 확인된다. 1조2200억원 규모의 이 거래를 두고 유통업계는 모바일 쇼핑 확산에 따른 이마트의 위기로, 부동산업계는 성수동 상권의 가치 상승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크래프톤이 밝힌 이유는 달랐다. “젊은 인재 채용을 위해” 본사를 서울로 이전한 것이다.
눈여겨볼 점은 크래프톤이 이미 IT 기업들이 밀집한 판교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이 자리 잡은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조차도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지방 도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에는 산업단지 조성이 지방 도시 성장의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산업 인프라보다 정주 인프라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울산의 사례를 보자. 한때 울산은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대표적인 공업 도시였지만,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젊은 인재 유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수도권에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족을 서울에 둔 채 혼자 내려오면서, 기대했던 인구 유입 효과는 사라졌고, 지역 상권 또한 침체의 늪에 빠졌다.
청년층의 수도권 이동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울산의 사무직·서비스직 일자리 부족은 특히 여성 인재 유출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도시에서의 여성 인재 부족은 기업 운영과 지역 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제조업의 패러다임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AI, 로봇 기술, 스마트 팩토리 도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연구개발과 시스템 운영 인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울산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년층이 머무를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거 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수다. 청년 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되어야 하며, 이는 단순한 숫자 증가가 아니라 입지와 생활 환경을 고려한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
문화·상업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시급하다. 과거 울산은 ‘노잼시티’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업지역 개발과 문화 콘텐츠 확충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주의 황리단길처럼 개성 있는 상업 공간을 조성하고, 스트리트 아트, 공연, 크리에이터 중심의 문화 콘텐츠를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젊은 인재가 정착하려면 결국 ‘아이를 키우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보육부터 교육, 여가까지 전반적인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미래를 책임질 세대는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다.
울산은 지리적·산업적으로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래 산업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지금 울산이 MZ세대를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업과 인재가 모두 떠나는 도시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위한 변화는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MZ세대가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곧 산업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정협 서호홀딩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