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세계 이목이 쏠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경제정책을 연설하는 무대인 만큼,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저자의 눈길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글로벌 리스크로 ‘이상기후’가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이상기후’를 최고의 리스크로 지목한 것은 2022년 이후 벌써 4년째다. 모두 고민하는 사이에도 기후변화는 진행되고, 위기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열릴 즈음, 미국 캘리포니아는 산불에 휩싸였다. 400조원에 달하는 재산피해와 21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재앙의 씨앗은 2020년부터 이어진 대가뭄에 있었다. 건조한 환경으로 작은 불씨도 빠르게 확산됐고, 비상용수가 부족해 피해가 커졌다. 지난해 4월 캘리포니아로부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바이에는 물난리가 났다. 1년치 강수량인 100㎜의 비가 반나절 만에 쏟아졌다.
전 지구적으로 극한 홍수와 가뭄이라는 상반된 기후재앙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이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나타난다. 군산의 경우 지난해 7월 관측 사상 최다인 시간당 146㎜의 폭우로 6명이 사망·실종됐다. 그 후 9월에는 상황이 급변해 가뭄이 찾아왔다. 울산도 홍수와 가뭄 사이에서 고민이 깊다. 2016년 태풍 ‘차바’로 태화강이 범람한 후 매년 홍수 걱정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향후 2040년에는 하루 12만5000t의 물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첨단산업 용수 증가, 강우 패턴 변화로 인한 기존 취수원 공급 한계 등 어려움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극한기후의 원인에는 물의 위기가 있다. 기온 상승으로 물 순환이 변하며 대기, 수권, 지표 등 기후시스템 전반에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물 문제 해결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물관리 방식을 마련하고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다. 기후테크 산업 활성화와 충분한 물그릇 확보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기후테크의 중요성은 커진다. 디지털트윈, AI 등 첨단기술을 물관리에 적극 도입·활용하면 데이터 기반 분석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판단으로 재난대응의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나아가 최적의 시설 운영으로 기존 인프라 역량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를 위해 물관리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한 기관이 지역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치수의 핵심인 물그릇 확보다. 세계 각국은 물그릇 확보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최근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미국은 지난 1월22일, 2020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진행 중인 저수지 건설 프로젝트(Sites Reservoir Project)에 1억달러를 즉각 지원했다. 일본과 중국 등도 중단된 댐 건설 프로젝트를 재개하고 있다. 동시에 댐 가치의 재발견도 진행 중이다. 댐은 수력발전 외에 수상태양광, 수열에너지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다목적 시설로서 주목받는다.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기후위기 완화라는 역할로 댐의 가치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댐은 물문제 해소의 중심에 있다. 그간 국내 지형과 기후 특성상 홍수·가뭄의 피해를 예방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이러한 댐의 가치를 이어가려면, 급변하는 강우 패턴을 고려해 물그릇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물그릇 확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댐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첫걸음은 기술이 아니라 구성원의 동의를 모으는 데서 시작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협력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은 국가와 지역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열쇠이자 국민 일상을 지키는 최선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테크 산업의 성숙한 발달과 충분한 물그릇 확보가 이뤄진다면, 글로벌 리스크 1위의 자리에서 ‘이상기후’가 내려오는 그 날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물그릇에 담길 기후 해법을 고대하며 조심스레 희망을 이야기해 본다.
류형주 한국수자원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