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세계는 소위 스트롱맨(Strongman)의 전성시대다. 4년 만에 화려하게 재등장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하여 장기 집권 중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등이 그들이다. 강력한 카리스마에 힘입어 철권통치로 자국은 물론 세계를 쥐락펴락한다. 무력 침공에서 관세 전쟁 등 스트롱맨들의 언행 하나하나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들 스트롱맨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우리나라는 외교와 안보는 물론 정치와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를 잘 활용하면 디딤돌이 될 수 있지만, 잘못 활용하면 걸림돌이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다자간 국제회의는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수출입 등 무역에 의존하는 산업도시 울산으로선 국제회의를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국제회의에 나서는 우리 정부에 울산의 입장과 처지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그런 기회와 여건이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회가 찾아오고, 여건이 마련될 때 보다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 울산의 기업과 산업의 성장을 위한 일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울산과 시민의 번영을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울산이 다자간 국제회의를 유치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여러 여건상 쉽지는 않다.
그렇다면, 울산과 인접한 도시에서 열리는 국제회의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20년 만에 절호의 기회와 여건이 찾아왔다. 바로 APEC 정상회의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과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정상이 모이는 다자회의가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셈이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에 울산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이에 따라 정상회의에 따른 성과와 결실도 보지 못했다. 정상회의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한 탓도 컸다.
안보는 물론 날로 격화하는 경제 전쟁에서 소외되어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다자간 국제회의의 방향과 결론을 자국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물줄기를 이끌어야 한다. 국가 간 경쟁은 물론 도시 간 경쟁에서도 유리하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세계의 중심인 울산의 산업과 기업이 선도 위치를 수성하기 위해서는 스트롱맨들이 집권하고 있는 강대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원과 협력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우리시는 경주에서 열리는 2025 APEC 정상회의가 울산이 글로벌 도시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높일 수 있도록 ‘APEC 울산시 지원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경제부시장을 단장으로 관련 실국은 물론 울산상공회의소로 지원단의 범위를 확대했다. 정상회의와 별도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소규모 회의를 유치하고, 외교 당국 및 주한 대사관을 통해 울산으로 관광과 숙박을 최대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해군 함정 최신화 정책에 따라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는 HD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한다는 전략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우리시도 대외환경을 신속히 파악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K-방산의 위력을 직접 보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2009년 부주석일 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직접 방문한 바 있다.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G2 국가의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울산의 산업 현장을 누비는 장면이 나온다면, 그 자체로 울산은 대박이다. 해오름동맹의 한 축인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울산도 관심을 갖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협조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시는 김두겸 시장의 지휘 아래 울산의 산업과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주 APEC 정상회의를 도약의 뜀틀로 만들 것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울산에서 만난다는 역사적인 장면이 전혀 불가능한 그림만은 아니다.
김종대 울산시 대외협력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