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어떤 검사가 검찰 게시판에,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의 공정을 의심하는 글을 올리면서, 헌재가 대통령의 3분 발언 요청마저 거부하였고, 대통령의 직접 신문도 불허하였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런 헌재의 태도는 하얼빈에서 이토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인 판사의 태도만도 못하다고 하였다. 일본인 판사는 안 의사가 이토를 암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진술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글은 대부분의 사실관계가 틀렸다. 우선, 헌재가 대통령의 의견진술을 막은 적은 없다. 홍장원 증인에 대하여 국회 측과 대통령 측이 동일한 시간 동안 각자 증인신문을 하였고, 그 후 윤 대통령이 증인신문 결과에 대하여 8분 동안 의견을 진술하였다. 그런데 그 후 뒤늦게 대통령측 변호사가 3분만 더 질문시간을 달라고 하자, 헌재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의견진술을 하지 못하게 한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대통령의 지위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신문을 하면 증인이 자유롭게 증언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재판관 전원일치로 대통령의 직접신문은 제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수긍이 되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안중근 의사의 재판을 보면,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한 후, 일본 관동도독부 여순지방법원에서 1910년 2월7일, 8일, 9일, 10일, 12일, 14일 모두 여섯 차례 재판을 받았다. 판사는 한 사람이었고, 일본인 변호사 2명이 국선변호인으로 참여하였으며, 통역관이 있었다. 8일 동안 6일을 연속 재판하고, 마지막 날인 2월14일에 바로 사형선고를 하였다(아래 재판내용은 김흥식 엮음, 안중근재판정참관기에서 인용함).
안 의사는 법정에서 이토를 사살한 것을 인정하였고, 증거서류에도 동의하면서, 진술을 통하여 한국의 주권을 빼앗아 가려고 획책한 이토의 만행을 알리는 데 주력하였다. 즉 범행의 동기를 고발하는데 주력한 것이다. 탄핵심판 첫째 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를 진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날 헌재는 대통령의 진술을 경청하였고, 당연히 비공개를 선언한 적이 없다.
이에 반하여, 안 의사 재판 둘쨋날, 안 의사가 “나의 목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자, 판사는 “꼭 말할 필요가 있는 얘기라면 요점만 간추려서 진술하라”고 하였고, 안 의사가 일본의 만행을 언급하면서 명성황후의 시해사건 등을 거론하자, 판사는 “감히 그런 말을 한다면 재판의 공개를 금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안 의사가 “이토는 일본천황에게도 역적”이라고 하자, 판사는 재판의 비공개를 선언하고 모든 사람의 퇴정을 명하였다. 비공개 재판에서 안 의사가 진술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안 의사 재판 다섯째날, 일본인 국선변호인은 최후진술에서 판사의 경청에 감사를 표시하였고, 피고인의 행위가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토를 살해하여서 조국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진심만큼은 가련하기 짝이 없으니 증오하지 말고 징역 3년으로 해 달라고 하였다. 그 후 안 의사가 최후진술을 하려고 하자, 판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제까지 같은 말을 반복해 왔는데, 순서를 정해서 한 애길 또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안 의사는 “검사와 변호인은 내가 오해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토의 시정방침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오해란 말은 당치도 않다”고 전제하고, 이토의 만행을 장시간 언급하였다. 그러자 판사는 “그쯤 말했으면 이제 되었다고 생각하는데”라면서 제지를 했고, 안 의사도 진술을 마무리했다.
판사는 안 의사의 진술을 여러 차례 제지하거나 비공개로 방해하였고, 안 의사의 주장에 대하여 그 당부를 따져보려 하지 않았으며, 관련 증인을 소환한 적도 없다. 판결문에도 안 의사의 살인행위만 언급하였고, 안 의사가 주장한 내용에 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인 판사는 안 의사의 주장을 통째로 무시하고 최후진술 정도를 경청하는 시늉만 하였을 뿐이다. 8명의 재판관이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비상계엄 동기와 관련된 증인까지 소환해 가면서 신문을 진행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헌법에 의하여 구성된 헌재를 모욕하려는 의도에서, 엉터리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일본인 판사의 경청을 운운하는 글이, 검찰의 게시판에 올라왔다고 하니,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