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연재에서 ‘로맨스(romance)’의 기원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한자 ‘낭만(浪漫)’과 일본식 표현 ‘로망(ロマン)’의 유래를 알아본다. ‘로맨스’라는 단어는 로마에서 사용되던 라틴어가 로마제국의 확장과 함께 유럽 각지로 퍼지며, 지역 언어와 결합해 로망스어로 발전한 데서 유래했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민중의 언어로 쓰인 기사도(騎士道, chivalry) 이야기를 ‘Romanz’라고 불렀으며, 이는 점차 모험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뜻하게 되었다. 이후 ‘Romance’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연결되며, 연애와도 관련된 의미로 확장되었다.
18·19세기 유럽에서 ‘Romanticism’이 등장하며, 로맨스는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이를 ‘浪漫主義(낭만주의)’ 또는 ‘ロマン主義(로망주의)’로 번역했다. 1907년 일본 문호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소설 <태풍(野分)>에서 ‘낭만파(浪漫派)’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용어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로망스(ロマンス)’와 ‘로망(ロマン)’이 각각 다른 의미로 분화되었다. 로망스는 연애 이야기를 뜻하는 단어로 정착되었고, 반면 로망은 ‘꿈, 이상, 목표, 모험’과 같은 추상적인 의미로 확장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대부터 ‘낭만’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초기에는 문학·예술 사조를 의미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분위기를 뜻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으며, ‘운치 있는 감성, 로맨틱한 분위기’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 무렵 일본에서 사용되던 ‘로망(ロマン)’이 한국어에도 유입되며, ‘낭만’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로망’은 단순한 감성을 넘어 ‘이루고 싶은 꿈, 이상적인 목표’를 뜻하는 말로 정착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로맨스’라는 단어에서 사랑과 감성을, ‘낭만’에서 운치와 분위기를, 그리고 ‘로망’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이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 단어들의 뿌리는 고대 로마의 언어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사실이다.
심민수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