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생계를 유지하려 애쓰던 한 여배우가 죽었다. 25세, 음주 운전 후 3년, 반성 없는 자숙, 밉상, 홀덤바, 카페 알바, 방탕한, 싹수 노란. 그녀는 쏟아지는 비난과 끝없는 막말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어둠 속에서 홀로 조용히 죽었다. 우리는 영화 ‘아저씨’에서 어린 그녀의 연기를 보고 좋아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온갖 비난과 막말을 즐겼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자성을 이야기한다.
음주 운전은 잘못이다. 충분히 비난받을 만하다. 그녀는 반성하며 자숙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 누구에게도 그녀를 죽게 할 권한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녀는 해당 사고로 금전적 피해를 본 건물과 30여곳의 상인에 대한 피해 보상금과 합의금, 중도 하차한 작품들과 광고 위약금, 벌금 2000만원 등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람들의 비난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법적 처벌이나 보상이 끝난 상황에서도, 사과와 반성이 이루어진 뒤에도, 언론은 인스타그램 게시물 하나하나마다 부정적인 기사를 쓰거나, 엉터리 정보를 재구성해서 만든 유튜브 등의 영상을 통해 ‘마녀사냥에 특화된 알고리즘’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것을 SNS나 커뮤니티에 퍼 나르고 댓글을 남겼다. 누군가를 철저하게 세상에서 고립시키는 것, 그래서 더는 살기 힘들게 하는 것, 이 시대가 만든 ‘사회적 살인의 구조’이다.
죄에 대해 비난하고, 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잘못을 박제해서 끊임없이 공격함으로써 사람을 고립시키고 점점 움츠러들게 하여 죽음의 문턱을 스스로 넘게 해서는 안 된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기 어려운 그녀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는 없었을까. 소속사조차 없어져서 쏟아지는 비난과 조롱에 적절한 대응조차 하지 못했던, 아직은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25살짜리 여배우, 우리는 왜 그토록 그녀에게 잔인했던가. 아니 우리 중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새론.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