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 사람마다 달라”
A(27)씨는 타인과의 대화가 어렵다. 고등학교를 희망하지 않던 곳으로 진학하면서 친구 없이 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졸업 후에 입대했지만, 잘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과적 진단을 받아 조기 전역했다. 이후 방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회 복귀를 위해 국비 훈련으로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활발한 구직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다 울산청년미래센터를 찾았다. 그는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심리적 문제로 센터 내 집단교육 프로그램에 먼저 참여했다. 이후 소규모로 실시되는 동아리 활동, 연말 문화 활동, 캠프 등에 잇따라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 센터의 안정적인 분위기에 적응이 될 무렵 자발적으로 상담을 요청했고 몇 시간 동안 자필로 본인의 서사를 쏟아냈다. 이후에는 익숙지 않지만, 육성으로 짧은 대화도 이어 나갔다. 그에게는 취업이나 자립과 같은 결과적인 성취보다는 자신을 이해하고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반면 B(29)씨는 대학 졸업 후 5년간 병원에서 근무하며 업무 스트레스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작년에는 큰 수술을 받았고, 이후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동시에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자주 만나지 못하면서 실질적인 고립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과 외로움이 B씨를 힘들게 한다. 혼자서 해낼 수 있을지 고민했고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치료와 회복의 일정으로 센터의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개인의 건강한 생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일상생활루틴회복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례 관리자와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탈고립을 위한 일상 계획을 촘촘하게 작성했고, 선정 회의를 통해 요양보호사 교육 실습비와 운전면허 도로 연수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그 결실로 최근에는 지역 내 노인 요양시설에 요양보호사로 취직했다. 집단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그였지만 1대1 밀착 사례 관리를 통해 자신의 생활을 계획하고, 유지하고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탈고립, 시간 걸려도 괜찮다”
홍국진 울산청년미래센터 팀장은 사례관리자로서 센터에서 만나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이야기는 예상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말했다.
홍 팀장은 “누구는 학창 시절, 군 생활, 직장 등에서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경험하고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은둔생활을 시작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반복된 취업 실패와 시험 불합격을 거치며 주위와 자신을 비교하다 자존감이 무너져 스스로 세상과 단절을 선택하기도 한다”며 “가정 내 갈등, 정신건강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 청년이 고립으로 향하는 길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고립과 은둔’이라는 결과만 보고, 같은 방식의 조언을 하려 한다. 단순히 ‘밖으로 나가라’ ‘취업해라’ 같은 조언이 이들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들이 다시 사회와 연결되려면, 각각의 사연을 이해하고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 팀장은 고립 은둔 청년에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성과 대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홍 팀장은 “고립과 은둔을 경험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른 성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이다. 취업 인원, 프로그램 참여 인원 같은 정량적 평가로는 이들의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며 “어떤 청년은 센터에 방문한 지 수개월이 지나서야 첫 면담을 요청했고, 어떤 이는 몇 년이 걸려서야 집 밖으로 나올 용기를 냈다. 그 시간이 길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홍국진 팀장은 “걱정이 담긴 훈계, 강요, 재촉이 그들을 위함이 아니라 고립 은둔의 촉발 요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들이 자신의 속도로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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