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 타락선거가 아닙니다. 아예 금권선거가 관행으로 자리잡아 해마다 심해지는데…”
지난달 20일 울산 남구 A농협의 비상임이사 선거 과정에서 금품 및 향응 제공이 있었다는 공익제보가 남부경찰서로 접수됐다. 후보자 20명이 출마해 비상임이사 10명을 뽑는 선거 과정에서, 다수의 후보자들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내부고발이었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 “요즘 시대에, 그것도 농협에서 금권선거라뇨”라고 말하자 오히려 이제 알았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선배들과 주위 사람들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 요즘 시대에, 아직도 부정·부패 선거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익제보에 따르면 이번 비상임이사 선거 과정에서 대의원들에게 단체로 금품을 전달하는 등의 부정행위가 행해졌다. 특히 후보자가 많아 선거가 과열되면서 평소 관행적으로 전달되던 액수를 훌쩍 넘은 금액이 대의원들에게 전해졌다는 소문도 돈다. 실제 금품을 제공했다던 이들의 내부고발이 접수된 점을 감안하면 이 제보를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A농협 내부관계자는 “이전부터 암암리에 이 같은 행위가 진행됐는데 해마다 심해지더니 결국 도를 넘은 것 같다”며 “문제는 ‘돈을 많이 뿌려야 당선된다’는 잘못된 선거 방식이 아예 고착화돼, 앞으로 수많은 농협 선거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는 A농협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현재 울산의 다른 단위농협을 포함해 경남, 전북 등 전국 농협 비상임이사 선거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위법 행위가 속출해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농협 비상임이사로 선출되면 조합원 자격심사, 사업 승인, 예산 집행 등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이사 회의 참석시 40만~50만원 상당의 수당이 지급되기도 하는 등 농협 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책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째 농협 비상임이사 선거 시즌마다 전국에서 부정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행정당국과 농협 측의 과실 때문이다.
농협 비상임이사 선거는 간선제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어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청렴한 선거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해마다 제기된다. 비상임이사 선거는 소수의 대의원 투표로만 진행된다. 이 중 과반만 획득하면 되기에 특정 수십 명의 표를 얻기 위한 금품 제공 등 각종 악습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선거 시즌마다 반복되는 고소고발전은 행정력 낭비로까지 이어진다. 해마다 청렴해진다는 선거 문화 속 비상임이사 선거는 갈수록 노골적인 금권선거가 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이다. 제대로 된 조사·처벌과 함께 구조적 문제 개편 등으로 농협 비상임이사 선거가 이같은 오명을 벗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혜윤 사회문화부 기자 hy040430@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