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감 국가(Sensitive Countries)는 미국 정부가 외국의 기업 또는 개인과 거래 시 국가 안보, 핵확산 억제 또는 테러 지원 위험의 관점에서 특별히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국가로 분류해 리스트(SCL)에 기재되어 있는 나라를 말한다. 과거 지면을 통해 몇 차례 설명한 바 있는 수출관리규정(EAR)과 같은 국제통상과 무역을 관할하는 미국 정부 부처는 상무부이나, 민감 국가 리스트는 우리나라의 산업부에 해당하는 에너지부가 관할하며, 부령인 에너지부 조달규정(DEAR)의 형식으로 규정되어 관련 당사자는 거래 전 인허가 및 절차 규정을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를 부담한다.
현재 리스트에는 북한을 포함한 25개국이 등재되어 있는데, 이 리스트에 다음 달부터 한국이 포함된다. 미국이 관리하는 국가 목록에 북한이 들어있다면, 잘은 모르더라도 무언가 우호적인 대상은 아니겠구나!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 북한과 나란히 우리나라가 들어간다니,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민감 국가의 기업이나 개인은 미국의 유관 기관과 핵 에너지, 인공지능 등 관련 기술 및 정보 교류를 포함한 거래 시 이전과 다른 제약을 받는다. 그 정도라면 감수할 만한 불편이 아닌가 막연히 생각할 수 있으나, 다른 경제 제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외 정책은 다른 권역의 국가, 기업, 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4월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이 유럽 등 제3국 소재 글로벌 기업들과의 거래 시 기존의 복잡다단한 규제 준수의무에 더하여 SCL 리스크가 자신들과의 거래 이행에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심을 해소해 줄 것을 계약상 의무(warranty)로서 요구받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하게 된 지난 수 년간의 경위와 지정 여부조차 알지 못했던 한국 정부의 실책은, 결국 시차를 두고 우리 사회의 전 구성원들이 나누어 부담하게 될 손해가 된다. 관련 리스크는 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밝혀낼 것으로 보여 이를 더할 필요는 없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관계만 보더라도 이것이 일종의 자초위난(自招危難)임은 기록해 두어야겠다. 미국 정부가 관련 정책과 제도를 지난 2018년부터 추진해 온 점을 감안하면, 민간을 포함한 한국 정부의 관련 대응은 무지와 무대응을 넘어 자해(自害)에 가까웠다.
향후 대응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금도 관련 사태를 마치 미국 정부의 외교적으로 과장된 제스처 정도로 간주하여 엄중히 대응해야 할 정책 문제가 아니라고 보거나 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던 개인의 일탈에서 비롯한 해프닝이어서 간단히 풀 수 있는 오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려는 정부 관계자들과 사회 일각의 태도이다.
민감 국가 리스트와 같은 제재 리스트는 본래 취지를 확장하여 종종 미국 정부가 대외 정책을 시행하는 수단으로 기능해 온 전례들이 있다. 현 미국 정부가 캐나다 등 인접 동맹국들에게 보이는 최근의 정책 변화가 얼마나 전면적인지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 변화야말로 표면상 사소하다는 이유로 간과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로서는 예민하게(sensitive) 반응해야 할 대상이어야 옳다.
미국에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이래 거의 매주 우리나라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경제, 군사 관련 새로운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가 소개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경상시론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는 기회를 빌려 이 넘쳐나는 관련 소식과 정보 가운데 속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요한 주제를 왜곡 없이 알리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개인이 자신의 투자 수익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며 글로벌 경제 환경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듯, 이번 글을 포함하여 매번 주제를 정하여 쓰는 글을 통해 독자들께서 법의 관점에서 세계의 변화를 살펴보고 통찰을 얻는데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번외의 말로 함께 적는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