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104)]왜(?)가 없거나 부족한 사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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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反求諸己(104)]왜(?)가 없거나 부족한 사회, 한국
  • 경상일보
  • 승인 202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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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

아주 오래전 결혼하기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을 본 적이 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영화 좋아하십니까?” “예” “한국 영화도 좋아하십니까?” “예” “선생님께 실망입니다. 저는 한국 영화는 안 봅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게 왜 실망인지요?” “한국 영화니까요” “한국 영화가 왜 어때서요?” “송 박사님 같은 분이 왜라고 물으시니 더 실망입니다” “한국 영화 본 적 있습니까?” “저는 한국 영화는 보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를 보지도 않고 어떻게 한국 영화는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꼭 봐야 압니까?” 그녀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고향 친구가 내게 말했다. “친구야! 이거 몸에 좋다더라” “그게 뭔데?” “몸에 좋은 거다. 그냥 먹으면 된다.” “그게 왜 몸에 좋은데?” “내가 친구에게 나쁜 것 권유하겠나?”. 친구는 그것이 왜 몸에 좋은지, 왜 내가 먹어야 하는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인이 내게 말했다. “송 교수님! 투표하실 거죠?” “예” “당연히 이 사람에게 투표하실 거지요?” “왜 그 사람인지요?” “아니 그럼 송 교수님은 이 사람이 아니고 저 사람입니까?” “그게 아니라 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까요” “저 사람은 왜 나쁜지, 이 사람에게 왜 투표해야 하는지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이 사람을 찍게 되어 있습니다”. 그날 나는 나쁜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었고, 당연한 것조차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이 되었다.

왜(?)가 없거나 부족한 사회, 어쩌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분열과 위기는 이것으로부터 오는지도 모른다. 왜 없는 이해는 객관성을 잃어버리기 쉽고, 왜 없는 판단은 근본 없는 주관적 편견에 치우치기 쉽다. 왜 없는 실행은 독단적이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게 하고 갈등과 다툼을 불러온다. 더구나 사유 공간을 줄이고 다양성을 없이 하고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한국 교육의 현실은 없거나 부족한 왜(?)와 결합하여 극단의 분열로 우리 사회의 조화로운 공동체적 삶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그저 걱정만 쌓인다.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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