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헌법재판소 결정과 법원 판결의 기속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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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헌법재판소 결정과 법원 판결의 기속력
  • 경상일보
  • 승인 2025.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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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지방자치단체가 관련법률 상으로는 허가를 해 주어야 하는 경우인데도, 주민들의 민원을 지나치게 의식하여서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허가를 신청한 당사자는 지방자치단체의 허가거부처분에 대하여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행정소송은 해당 처분의 위법 여부를 가려서 위법하면 취소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법원이 지방자치단체에게 허가를 해 주라고 명령을 내리는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런 행태를 인정하면, 법원이 행정기관에게 어떤 명령을 내리는 것이 되어서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법원이 허가거부처분의 위법을 확인하는 판결만 하여도, 지방자치단체는 그 판결의 취지에 맞추어서 자기 스스로 다시 새로운 허가처분을 한다. 행정소송법이 판결에 따라서 새로운 처분을 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법률용어로는 행정기관에 대한 판결의 기속력이라고 한다.

지방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필자의 경우, 약 30년 동안의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지방의 작은 권력을 가진 행정기관이 그런 행정소송법의 규정을 무시하고,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는데, 그 취지에 엇나가는 행정권을 발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국회가 추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하여, 최상묵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을 하지 않자, 국회의장이 권한대행자를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27일 전원일치 의견으로 권한대행자가 마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그 대신 헌재는, 권한대행자에게 마 후보자를 임명하라는 명령을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런 명령을 해 달라는 국회의장의 청구는 각하한다고 하였다.

이제 권한대행자는 헌재의 결정에 맞추어서, 마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여야 한다. 헌법이 권한쟁의심판을 도입하여서 헌재에 판단권한을 준 것은, 국가기관이 헌재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한 것이고, 또 헌법재판소법에도 행정소송법과 거의 동일하게, 헌재 결정의 기속력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 권한대행은 이를 무시하고 현재까지 마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2023년 1월 경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의 문제와 관련하여 김의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였는데, 이에 참여연대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법률비서관실이 개인 문제와 관련해 고발에 나설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통령실에 ‘대통령비서실 운영 등에 관한 규정’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내부 규정에 보안 사항이 포함돼 공개될 경우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에 참여연대는 정보공개거부처분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1, 2심에서 모두 승소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15일에 대법원이 참여연대의 승소를 확정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위 판결을 무시하고 정보공개를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뉴스타파와 참여연대가 대통령비서실 직원 명단 공개를 청구하였다가 거부당하자 대통령실을 상대로 역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도 정보공개청구자가 1, 2심에서 모두 승소하였고, 지난 2월23일에는 대법원이 그 승소를 그대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그 판결을 완전 무시하고, 현재까지도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서 현재 바티칸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흥식 추기경은 지난 3월22일 담화를 발표하고, 교황의 건강 등 세간의 관심사를 언급한 후, “제가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누구보다 정의와 양심에 먼저 물어야 하는 사회지도층이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헌재 결정이나 법원 판결의 기속력을 무시하는 일은, 일선 행정기관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 오히려 높은 권력기관이 헌재 결정이나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지도층이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는 유흥식 추기경의 탄식을 새겨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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