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향이 어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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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향이 어디세요?
  • 경상일보
  • 승인 202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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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농협중앙회 울산 울주군지부장

한국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말이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이 굳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수도권 집중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5000만명 이상 조건을 만족하는 국가를 ‘30-50 클럽’이라 부르며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 7개국이 이에 속한다. 이들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수도권 집중도는 유독 두드러진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2.5%가 수도권에서 창출됐으며, 이는 미국(5.1%)이나 일본(24.3%)과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일자리와 인구 분포에서도 수도권 쏠림 현상은 뚜렷하다. 2022년 기준 일자리의 58.5%, 인구의 50.7%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며, 수도권 인구 비율은 2015년 49.4%에서 2022년 50.7%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며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23년부터 ‘고향사랑기부제’를 시행했다.

개인만 기부할 수 있으며, 연간 한도는 2000만원이다.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1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16.5%의 세액 공제 혜택이 제공된다. 또한 기부금의 30%는 해당 지역의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고향사랑기부제’로 모금된 금액은 879억원에 달하며, 전국 243개 지자체 평균으로 보면 약 3억6000만원이 모였다. 특정 사업에 대한 지정 기부도 가능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이 제도를 통해 점차 희미해지는 ‘고향’이라는 개념이 다시금 정감 어린 의미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필자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사투리를 많이 쓰는 편이었지만, 사람들과의 동질감을 형성하는 질문인 ‘고향이 어디세요?’에 대해 쉽게 답하지 못했다.

너무 외진 곳이라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아, 비교적 잘 알려진 도시인 ‘안동’ 근처의 청송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어릴 적 고향을 떠올려 보면, 지금처럼 편리하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정감이 넘쳤던 것 같다. 텔레비전도 오후 5시 정도부터 밤늦게까지 방영됐고, 채널도 세개 정도뿐이었다. 마을마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흔치 않아 인기 있는 ‘전설의 고향’이 방영될 때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청하곤 했다. 지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없었으며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유선 전화기도 집마다 없었다. 가끔 ‘아재요 누구한테서 전화 왔어요!’라며 옆집을 찾는 전화에 동네 방송을 하던 일도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따뜻한 정이 넘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효율과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정(情)과 추억을 쌓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울산은 해발 1000m 이상의 봉우리가 일곱 개나 솟아 있는 영남알프스를 비롯해 도심 가까이에 문수산, 입화산, 무룡산 등 등산하기 좋은 산들이 많다. 필자는 문수산을 300번 넘게 올랐을 정도로 이곳의 자연을 사랑한다. 타지에 갔다가 울산IC를 지나 들어설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보면, 이제는 완전히 울산 사람이 된 듯하다.

이제 누군가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한다. “살기 좋은 꿀잼 도시 울산입니다.”

시행 3년째를 맞은 ‘고향사항기부제’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고향의 따뜻한 정(情)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명주 농협중앙회 울산 울주군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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