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비였다. 온양 산불 현장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사투를 벌이던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었다. 지난 22일 점심때 시작된 온양 산불은 비가 내린 27일 저녁 큰 불길을 잡고 28일 아침에야 완전히 꺼졌다. 악몽 같은 이레였다. 고온건조(高溫乾燥)한 날씨에 용접 불꽃이 튀어 발화된 산불은 화재 현장뿐만 아니라 울산 전역을 난리 통으로 만들었다. 조그만 불꽃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 받은 김두겸 시장은 곧바로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실·국장 등 간부 회의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메뉴얼에 따라 대응책 마련을 긴급히 지시했다. 김두겸 시장은 비상 체제를 가동한 뒤 곧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을 살펴보고, 각종 보고를 받으면서 심상치 않은 산불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산불이 난 지역에서 태어났고, 대운산 일대의 지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불의 주 근거지인 대운산은 산세가 험악한 악산(惡山)이다. 관할 지자체인 울주군 직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울산시는 물론 구군 직원에 대해 순차적으로 동원령을 발령했다. 산불 상공에는 동원할 수 있는 헬기를 최대한 끌어모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경남 산청과 경북 의성 일대에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헬기를 확보해 추가 투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불진화대는 주불 진압에 나섰고, 울산의 공무원들은 방화선을 지키는 동시에 잔불 정리를 맡았다. 말이 잔불이지 켜켜이 쌓인 낙엽과 두꺼운 부엽토 층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를 연상시킬 만큼 끈질겼다. 꺼졌다 싶어 다른 곳을 끄고 돌아오면 다시 불씨는 살아났다. 죽은 듯 죽지 않은 불씨의 반복은 나무만 태운 것이 아니라 애간장마저 숯덩이로 만들었다. 산 곳곳에 쌓여있던 재선충 훈증처리목은 산불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평균 10시간 넘게 지속된 산불 진화 작업에도 불길은 잦아들기는 커녕 기세를 더욱 높였다. 평지에선 불지 않던 바람이 능선을 따라 해발 고도를 높일수록 방향과 강도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불었다. 바람에 따라 종잡을 수 없이 춤을 추는 산불을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불티와 연기에 맞서다 보면 어느새 얼굴은 숯검정으로 바뀌었고, 코와 목은 따갑고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햄버거와 김밥 등 간단한 요기꺼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랜턴에 의지한 채 깎지로 잔불 진화 작업을 해도 끝이 없었다. 낮엔 높은 기온과 산불의 열기로 금세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밤엔 산속이라 기온이 뚝 떨어져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지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울산의 공무원들은 한시라도 빨리 산불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했다. 온양 산불을 잡기에도 버거운 상황에서 지난 25일 낮에는 언양 화장산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멘붕이 왔다. 두 개의 대형 산불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어쩔 수 없이 인력과 장비를 분산할 수밖에 없었다. 언양 산불을 조기에 진화하고 온양 산불에 집중하기 위해 필수 인력과 장비만을 남긴 채 언양으로 공무원들을 집결시켰다. 다행히 산불 발생 20시간 만에 언양 산불을 잡고 온양 산불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산림을 초토화시켰던 산불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은 것은 봄비였다. 그러나, 봄비 이전에 산불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확산세를 멈추게 한 것은 산불 진화에 나선 모든 사람의 땀과 눈물이 밑거름이었다. 총력 체제로 산불 진압에 나선 울산 공무원들의 헌신과 노고도 큰 힘이 됐다. 해마다 봄이면 반복되는 대형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항구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는 숙제를 이번에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소나무 중심의 산림을 불에 강한 수종으로 갱신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고령층 중심의 산불진화대의 기동력과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 특히, 김두겸 시장이 밝힌 대대적인 임도(林道) 개설도 적극적이고 신속히 검토해야 한다. 언양 화장산은 임도가 있어 인력과 장비 투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던 반면, 대운산은 임도가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김종대 울산시 대외협력비서관
※외부원고는 본보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