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학급회장 선거 포스터를 보면 귀엽지만 각자 자신의 공약을 내세워 친구들을 설득하려 애쓰는 모습이 있다. 그 안에 경쟁은 있지만 상대방을 향한 비방은 없다.
지금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요한 시기다. 정치적 반목이 극단으로 치닫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보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고 허물을 드러내는데 더 많은 힘을 쏟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학급회장 포스터와 비교되어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대결적 정치와 무조건적 경쟁구도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갖춘 대한민국의 씁쓸한 뒷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내부의 경쟁에 집중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경제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 있다. 자국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패권 경쟁은 더 심해지고, 전쟁과 지정학적 충돌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달은 인간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의 영역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인간의 일자리와 생계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외부 환경 속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면서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우리가 하는 내부의 경쟁이 과연 새로운 생존 전략과 부합하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세계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평가한 자동차, 조선, 화학기업이 지금은 내수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 한국 경제를 이끌고, 지금의 울산을 만들었다.
필자는 기간산업의 구조적 전환이 진행되는 가운데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위한 포항·울산·경주 해오름동맹의 미래 먹거리는 관광사업이라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역을 넘어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기업을 존중하고 협력하고자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점을 매일 느낀다.
지역 내 다른 기업의 성공을 경계하면서 방해하는 공격적 행위, 서로 도왔던 기업인 간의 갈등이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모습, 기업인과 노동자가 끊임없이 반목하는 모습 등은 산업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협력과 연대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 세계 선진국의 모습과 정확히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경쟁의 형태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시 전체와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행정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행정은 법에 근거하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사회적 기준에 맞게 변화되지 않는다면 ‘공무원 마인드에 갇혀 있다’는 세간의 평가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절차와 형평을 중시하는 행정과, 효율과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하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지만 위기 속에서 서로 경계하고 불신하게 된다면 함께 위기로 향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와 경제 전쟁 중이다. 고려시대 거란부터 시작해서 6·25 한국전쟁까지 우리 국민은 외부로부터의 침략과 공격을 하나됨으로 이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위기의 시대를 돌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연대’이며,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반은 ‘공생’이다.
지자체, 기업, 지역 시민사회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성공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고, 시행착오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며 배우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행정은 규제가 아니라 지원의 플랫기이 되어야 하고, 기업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려는 철학을 품어야 한다.
울산은 산업수도로서 자부심을 지닌 도시다. 이제는 그 자부심 위에 협력과 연대의 문화를 더해야 한다. ‘누군가의 성공이 모두의 기회’가 되는 울산. 그것이 진짜 산업수도의 품격이며,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다.
지금이 바로, 그 첫걸음을 다시 내디딜 때다.
이정협 서호홀딩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