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조지아(Georgia)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북쪽에는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이 산맥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경계로 간주되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엘브루스산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범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특정 용의자를 인종, 나이, 신장, 외모 등으로 묘사할 때 백인을 가리켜 ‘Caucasian(코카서스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 먼 코카서스 산맥의 이름이 어떻게 백인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을까? 그 역사적 배경과 현재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Caucasian이라는 용어는 18세기 독일의 인류학자 요한 블루멘바흐(Johann Blumenbach)가 제안했다. 그는 인류를 다섯 인종으로 분류하면서 백인을 ‘코카서스인’이라 명명했다. 그 이유는 조지아 지역의 코카서스 산맥에서 인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외모의 표본이 발견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지역의 사람들이 신이 창조한 이상적인 인간의 형상에 가장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오늘날 기준에서 보면 유럽 중심적이며, 외모를 기준으로 한 비과학적 인종 분류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과학적 인종주의를 반영한 것으로, 인종 간 우열을 전제한 서열화된 사고였다.
미국에서는 19세기부터 법률과 사회 제도에서 백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Caucasian을 사용해 왔다. 현재는 인종 분류에서 ‘White’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지만, 여전히 Caucasian도 병행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코카서스 산맥 주변의 사람들과 백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역사적·지리적으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특정 집단을 우월하게 보는 시각에서 비롯되었으며, 다양한 정체성과 인종의 복합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을 중시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이 용어의 사용은 자제되어야 한다. 다만, 단어의 뿌리와 무관하게 현대적 용례에 인종차별적 의미가 없다면, 언어는 관용 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
심민수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