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깨진 유리창 법칙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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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깨진 유리창 법칙이 주는 교훈
  • 경상일보
  • 승인 2025.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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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

우리나라는 지금 전례 없는 인구 위기를 맞고 있다. 2024년 0.75명이던 합계출산율이 2025년에는 0.61명으로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이행이 7년4개월로 일본(35년)보다 5배 빠른 세계 최단 기록이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 현상도 심각하다.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기형적 구조는 지방 도시의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복합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법칙’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1982년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제시한 이론이다. 건물의 유리창 하나가 깨진 채 방치되면, 그곳이 관리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되어 주변에 더 많은 무질서와 범죄를 유발한다는 내용이다. 1994년 뉴욕시장에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는 이 이론을 도시 정책에 적용했다. 지하철 낙서 제거, 무임승차 단속,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 등 사소해 보이는 기초 질서 확립에 집중한 결과, 8년간 뉴욕의 살인사건이 67% 감소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론이 현실에서 증명된 것이다.

이 법칙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 사회는 여러 곳에서 ‘깨진 유리창’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방 도시에서는 인구 유출로 인한 상권 침체, 빈 건물 증가, 공공서비스 축소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한 지역이 쇠퇴하기 시작하면 젊은 인구는 더욱 빠져나가고, 이는 다시 지역 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업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불친절, 무성의한 서비스, 정리되지 않은 업무 환경 등이 조직 전체의 효율성과 고객 만족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교육 분야에서 나타나는 ‘깨진 유리창’ 현상이다. 성과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획일적 평가 체계가 인문학, 예술, 디자인과 같은 인간 중심적 학문 분야의 쇠퇴를 초래하고 있다. 이들 학문은 단순히 경제적 수익이나 즉각적 효율성으로 측정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예술은 감성과 상상력을 기르며, 디자인은 인간 중심적 환경을 창조한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 정책과 평가 시스템은 입학경쟁률, 취업률 같은 계량화된 지표로만 이들 학문의 가치를 재단하려 한다. 이런 편향된 평가 방식이 지속되면, 특정한 교육 분야의 위축이 전체 교육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깨진 유리창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악순환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지역별 인구 감소, 상권 변화, 교육 기관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관찰하여 문제의 징후를 빨리 포착해야 한다. 둘째로, 선제적 투자 전략이 중요하다. 문제가 심각해진 후 대응하는 것보다 초기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특히 인문학과 예술, 디자인 분야에 대해서는 경제적 수익성보다는 사회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셋째로, 공동체 복원력 강화가 중요하다. 도시재생사업, 주민 자치회 활성화, 지역 문화 콘텐츠 발굴 등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성찰과 예술적 상상력, 디자인적 창조력이 핵심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도시환경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경제적 기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문화적 감성과 공동체 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공감’ 능력이다. 문제를 수치와 데이터로만 보지 말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공감능력 또한 인문학적 소양, 예술적 감성, 디자인적 창의성에서 비롯된다.

깨진 유리창 법칙은 ‘하나가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는 경고이면서, 동시에 ‘하나를 제대로 고치면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깨진 유리창을 예방하고 발견하며 신속히 복구하는 실천력이 절실하며, 이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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