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을 목전에 두고도 선거공약의 체계성과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단편적이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약, 심지어는 즉흥적인 공약이 난무하는 가운데, 국가의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담은 종합적 공약 체계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선거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5년 또는 그 이후까지 영향을 미칠 국가 경영의 방향이 모호해지는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책임자이며, 선거공약은 유권자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되는 공약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향후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등 전 영역을 아우르는 청사진이다. 한 개인의 비전이 국민의 미래를 결정짓는 설계도로 작동한다. 이 설계도가 허술하거나 모호하다면, 우리는 또다시 즉흥적인 국정 운영과 정책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 특히 변화와 위기가 교차하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지도자는 더욱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공약이 갖추어야 할 핵심 조건은 바로 ‘체계성’이다. 이는 부문별 공약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고 보완되며, 하나의 국가 전략하에 통합돼야 함을 뜻한다.
예를 들어, 국방분야는 단순히 병력 감축이나 무기 현대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이버 안보, 첨단기술의 군사적 활용,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국방 운영체계 재설계 등과 맞물려야 한다. 외교는 전통적인 한미동맹이나 북핵 문제 대응뿐 아니라, 기후변화, 글로벌 공급망 및 관세 재편 등의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국제사회와의 협력 구상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산업과 경제 분야의 공약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을 중심으로 기술개발, 인재육성, 글로벌 경쟁력 확보 방안이 함께 다뤄져야 한다. 에너지 정책은 탈탄소 사회로의 이행,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역할, 에너지 안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현실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복지와 안전은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문제로, 단기적 현금성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 고령화 대응, 재난 시스템 강화 등 구조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인구문제와 밀착된 연금구조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의 설정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공약은 단지 듣기 좋은 말의 나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실현 가능성은 정책의 실행계획, 재정 확보 방안, 법·제도 개정 가능성, 관련 부처 및 이해관계자와의 조율 방안을 통해 검증돼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 약속은 오히려 국민을 기만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를 위해 대선 후보들은 각 공약에 대한 세부계획과 함께, 단기 및 중장기 구분을 명확히 하고, 연도별 이행 방안과 성과 평가 지표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공약의 비용 추계와 재원 조달 계획은 필수다. 이는 정치적 진정성과 공약 이행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공약은 단지 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지도자의 가치관과 국가관이 녹아 있는 정치적 선언이다. 어떤 공약을 우선순위로 삼고, 어떤 철학을 중심으로 국가 운영의 원칙을 세우는지는 그 지도자의 리더십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다. 공약을 통해 우리는 그가 국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국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려는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후보자들의 공약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추상적인 구호나 경쟁적인 포퓰리즘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한 정책의 내용을 충분히 비교하고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유권자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공약 발표 방식도 필요하다. 모름지기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어야 한다. 공약은 그 가능성의 첫 단초임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남호수 동서대학교 교학부총장 스마트모빌리티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