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끼를 밴 줄도 모르고 어미 당나귀를 재촉하였다 달빛은 파랗게 빛나고
아직 새도 깨어나지 않은 어두운 길을
온몸으로 채찍 받으며 어미는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으로 가는 길
새끼는 눈도 뜨지 못한 채 거꾸로 누워 구름처럼 둥둥 떠가고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도 묵묵히 빛나는 모성
원시인들은 그림을 그릴 때 엑스레이를 찍듯 그렸다고 한다. 어미 고래가 새끼를 배고 있다면 보이지 않는 뱃속의 새끼까지 그리는 것이다.
당나귀를 끌고 가는 상인은 어미 당나귀가 새끼를 밴 줄도 모르지만, 시인의 눈은 원시인들처럼 어미 뱃속의 작은 생명체를 본다.
시에는 새끼와 어미, 두 개의 세계가 등장한다. 새끼는 어미 뱃속, 양수 속에 머물고 있다.
양수는 부력으로 구름처럼 둥둥 새끼를 받쳐준다. 따뜻하고 편안한 양수 속에서 새끼는 종일 포근한 꿈을 꿀 것이다.
반면 어미는 어두운 길을 온몸으로 채찍을 맞아가며 타박타박 걸어야 한다.
시인은 그 길을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어미의 세계는 고달프고 험하다.
어미 당나귀를 채찍질하는 상인도 그 고단한 세상의 어둠과 추위에 맞서며 걷고 있는 것일 거다.
그래도 이 시가 따뜻하게 읽히는 것은, 엑스레이처럼 뱃속의 새끼를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 때문이다.
시인은 어미의 눈으로 새끼를 본다. 그 눈길은 섬세하고 따뜻하다. 언젠간 새끼도 세상의 길을 걸을 테지만, 그래도 지금은 구름처럼 새끼를 받쳐주는 저 모성.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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