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제작 방식은 회화에서 사진으로, 아날로그 필름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그리고 이제는 생성형 이미지의 제작으로까지 변화해 왔다. 우리는 점점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진은 아닌’ 이미지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구의 변화일 뿐, 예술에서 우열이나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진은 광학 장치인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시작됐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어두운 방 안에 외부 풍경을 반전된 이미지로 투사했던 이 장치는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고자 했던 화가들에게 유용한 보조 도구였다. 이후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카메라는 독립적인 장비가 됐고 사진이라는 새로운 시각 언어가 탄생했다. 사진의 탄생은 문자 중심의 시대에서 이미지 중심의 시대로 전환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날로그 필름 시대에도 조작이나 왜곡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현과 기록으로부터 시작된 사진은 오랜 시간 사실성에 대해 높은 신뢰를 받아 왔다. 이러한 신뢰는 오늘날에도 다큐멘터리나 아카이빙 영역에서 사진이 고유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다큐멘터리는 작가의 관점을 통한 현실의 해석, 전달에 초점을 맞추지만 아카이빙은 정보를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해 후대에 전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아카이빙은 예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사회적 기억을 구축하고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 매체를 넘어 시각적 역사를 형성하는 핵심 도구로 기능한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주로 위대한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돼 왔지만 오늘날의 아카이빙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목소리에도 주목한다.
필자가 최근 참여하고 있는 ‘울주의 100인, 100개의 이야기’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울주문화재단의 ‘신박한 예술 지원해Dream’ 사업에 선정된 이 프로젝트는 울주 지역의 주민 100명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인터뷰 영상으로 담는 작업이다. 오는 7월 1일부터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전시를 앞두고 참여 작가들은 마지막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고령화된 지역 사회에서 곧 사라질지도 모를 삶의 기억들을 수집하고, 2025년의 울주가 간직한 정체성을 기록하는 일이다. 이 기록은 지금보다 시간이 흐른 뒤,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이 사진과 영상 속에서 “그 시절 이곳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이렇게 살아갔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공동의 기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평범한 개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이러한 시도는 현대 아카이빙의 중요한 흐름이자 사회를 구성하는 진정한 다수의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진은 오늘날 수많은 방식으로 소비되고 활용되지만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여전히 사진이 가진 본질적인 힘, ‘기록’과 ‘재현’의 힘을 믿는다. 기억을 시각화 하는 매개로서 사진은 오늘도 시대를 증언한다.
김지영 울산젊은사진가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