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문화전(文畵展)]원효의 ‘화쟁’ 견해 다툼을 합리적 양상으로 변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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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문화전(文畵展)]원효의 ‘화쟁’ 견해 다툼을 합리적 양상으로 변화시켜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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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nk ladies / 유화 / 세로 130.3 x 가로 162.2㎝ 권영태 작.

격렬한 정치 쟁론이 태풍처럼 한국 사회를 할퀴고 지나갔다.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문을 열어젖히고 나아가는 통과 의례일 것이다. 악랄한 일제 식민 지배, 모든 것을 초토화한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남북전쟁을 겪은 나라가, 불과 1세기도 못 되어 이루어낸 성취는 가히 유례가 없는 기적이다. 경이로운 압축 고도화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일구어낸 성장과 발전의 수준은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필자는 전후 베이비 붐 세대다. 초등학교 때는 학급당 80명 넘게 2부제, 3부제로 수업했고, 고등학교까지 학급당 평균 70명이었다. 전후 폭발적으로 늘었던 그 세대 인구는 압축 근대화 과정에서 한몫 단단히 했다. 필자가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한국 사회의 변화는 분명 혁명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나날이 급변하는 문명과 문화가 당혹스럽지 않다. 혁명적 변화에 자연스럽게 응할 수 있는 것은, 필자 세대가 겪은 시대적 특이성도 한 요인이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변화를 좋아하는 기질’ ‘과거에 머물지 않으려는 성향’이 더 큰 요인으로 보인다.

필자가 30대 중반이던 때, 20대 중반의 한 미국 청년과 1년여를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낸 적이 있다. 미국에서 철학과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후 불교에 매료되어 수행자의 삶을 위해 동양 구도의 길에 나선 청년이었다. 스리랑카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현지의 선 수행을 직접 해보고 한국에 온 직후였다. 대화할 때마다 확인되는, 젊은 그의 넓은 지적 소양과 영성 지성은 인상적이었다. 그 친구의 말이 흥미롭다.

“한국에 비해 일본은 잘 정돈되고 질서 잡힌 사회입니다. 그러나 일본 사찰에서 지낸 3년 동안 딱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가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한국 땅을 밟고 한국인들의 말을 듣는 순간,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이상하게도 그 답답함이 단번에 뚫려 버렸습니다. 그때 ‘아, 한국은 기존의 질서에 짓눌리지 않는 혁명의 땅이다. 구도의 길을 걷기에 적합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압축 성장에 수반되는 문제들의 아우성을 듣고 있다. 진정 살기 좋은 나라,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아프게 겪고 있다. 필자는 ‘과도해진 쟁론 사회의 고통과 그 해결’의 문제를 주목한다. 그리고 ‘차이들의 상호 배제적 다툼’과 ‘차이 왜곡을 통한 부당한 차별’이 쟁론 사회의 핵심 병증이라고 본다. 아울러 이 병증을 치유하기 위해 ‘화쟁 사회의 수립’을 절박한 사회적 의제로 삼아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각 분야의 원로가 되어가는 베이비 붐 세대의 책무이기도 하다.

언어를 구사하는 한, 인간의 견해 다툼은 불가피하며 또 자연스럽다.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견해 다툼은 숙명이다. 인간 세상은 ‘견해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구성되어 간다. 언어능력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인간 세상에서 발생하는 견해 다툼은 언어의 채무다. 그런데 견해 다툼은 비합리적 양상과 합리적 양상으로 구분된다. 쟁론은 ‘견해 다툼의 비합리적 양상’이다, 그리고 화쟁은, ‘견해 다툼’ 현상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견해 다툼의 비합리적 양상’을 ‘견해 다툼의 합리적 양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견해 다툼의 비합리적 양상’은 ‘자기 견해의 전면적 긍정’과 ‘다른 견해의 전면적 부정’을 추구한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전면적 배타성으로 무장한 채 충돌하는 양상이 쟁론이다. 이에 비해 ‘견해 다툼의 합리적 양상’은, 언어의 배제적 속성을 주장의 차이와 특성을 명확히 하는 정도에 그치고, 견해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조정과 수정을 통해 더 좋은 견해를 수립하려는 태도와 방식이다. 이 합리적 양상은, ‘언어의 차이 구분 기능’과 ‘관계를 통한 변화의 역동성’을 결합하여 ‘차이들의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개인과 세상의 진보는 이 합리적 양상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원효의 화쟁은 이 합리적 양상을 정점 수준으로 나아가게 한다.

원효의 화쟁 사상에서는, ‘조건적 타당성과 가치’(一理)의 존재 여부 성찰, 견해의 타당성 및 부당성을 성립시키는 조건들의 인과관계나 의미 맥락을 성찰적으로 식별해 내는 ‘문(門)의 구분’, ‘조건적 타당성의 수용과 융합’인 통섭(通攝)이 핵심 역할을 한다. 견해의 차이들이 지닌 일리(一理)를 성찰적으로 식별하여 통섭시키면 쟁론을 화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원효 화쟁 사유의 중요한 요점이다. 그런 점에서 원효의 화쟁은, 현실의 구체적 쟁론 문제에 접속하여 ‘조건적 타당성·부당성의 식별’과 ‘조건적 타당성들의 개방적 융섭’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론적 사유다.

화쟁은 원효에 의해 열린 한반도 전통 지성 고유의 개념이자 성찰이다. 불교사상을 ‘화쟁’이라는 문제의식과 쟁론 치유 방법론으로 소화하여 철학적으로 펼친 사례는 원효가 유일하다. 한국 사상과 문화에는 화쟁 사회를 향한 염원이 다양하게 녹아 있다. 의천은 원효에 대해 “백가(百家) 이쟁(異諍)의 실마리를 화해시켜 일대의 지극히 공정한 이론을 얻었다”라고 평가하였고, 숙종 때는 원효에게 화쟁국사(和諍國師)라는 시호가 추증되었으며(숙종 6년, 1101), 명종(재위 1170~1197) 때에는 경주 분황사에 화쟁국사비(和諍國師碑)가 건립되어 조선시대 초기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한국은 전형적인 쟁론 사회의 양상을 표출하고 있다. 차이의 타자를 향한 혐오와 적개심을 여과 없이 비정상적으로 격렬하게 표출하는 분노 사회의 징후가 뚜렷하고, 이에 대한 치유적 대응이 절박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이타적 정서에 호소하는 전통 종교적 방식이나 사회공학적 대응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인간의 사유·욕망·정서·행위에서 목격되는 ‘차이들을 보는 시선’과 ‘차이들과의 관계 방식’을 성찰적으로 다루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인문학적 총력 대응이 필요하다.

경제적 압축 고도화 못지않게, 한국 인문 지성도 단기간에 높은 수준과 탄탄한 토대를 구축했다. 전통 지성을 토대로 보편적 합리성과 세계적 호소력을 지닌 ‘자생인문학’을 수립할 수 있는 수준이다. 쟁론 사회를 화쟁 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성찰과 방법론의 넓은 가교를 놓을 수 있는 역량이다. 자연과학에 투입되는 재원의 일부만 투자해도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다. 한국인이 오랫동안 품어온 화쟁 사회의 염원을 구현하기 위한 가성비 높은 투자다. 국가 재원의 균형적 분배로 인문 역량을 견실하게 확보해야 문화 강국이 된다.

글=박태원 인제대 석좌교수(화쟁인문학연구소 소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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