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에 얽힌 이야기]이념에 사로잡힌 증오로 뒤섞인 산…억새숲 너머 이름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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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에 얽힌 이야기]이념에 사로잡힌 증오로 뒤섞인 산…억새숲 너머 이름을 묻다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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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봉에서 바라본 재약산. 안개가 넓게 깔려있는 재약산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록과 해석이 충돌해 이름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 밀양 표충사 경내.

날씨가 물큰 달아올랐다. 돌 등을 타고 자란 이끼도 더위를 피해 쫑알댄다. 초여름은 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잎사귀를 안고 녹음을 푸는 계절이다. 발섭 나설 산객은 어젯밤 가시지 않은 이슬이 발등을 적셔도 마냥 좋다. 장군송이 군락을 이룬 빛 한 줌 없는 표충사 생태 숲길엔 그늘막을 쳐 놓은 것처럼 시원하다. 마치 솜씨 좋은 어부가 단 한 번 뿌린 그물로 더위를 몽땅 잡아들인 것 같다. 그래서였는가 이 표충사엔 오매일여로 한 철을 나고 깨달은 해산 스님의 오도송이 아직도 쟁쟁하다.

하늘을 덮는 그물을 쳐서 코 없는 짐승을 잡고
능히 달팽이 뿔로 우는 아이를 달래는데
금털사자가 웅크리고 앉았으니
기세가 당당하여 오르기 어렵도다.

표충사 일주문 앞에 섰다. 그 옛날 없었던 푯말이 눈에 띈다. ‘천황산 표충사’. 이 말이 가소롭다는 듯이 일주문에 걸린 ‘表忠寺載岳山’현판이 내려다보고 있다. 천황산이란 산명은 일제가 지은 것이니 없애고 원래 이름인 재악산(載岳山)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밀양시 향토사학자 측과 ‘天皇山日式名說의 고찰’을 근거로 천황산(天皇山)이 바르다고 주장한 울주군 향토사학자 이유수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 것을 2015년 말 국토지리정보원 국가지명위원회 지명심의는 울주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표충사 일주문 현판 ‘載岳山’이 저렇게 눈 시퍼렇게 부릅뜨고 있으니 산을 통째로 옮기지 않는 한 해결은 난망할 듯싶다.

그길로 들어서면 위풍당당한 탑 하나를 보게 되는데 ‘효봉대종사사리탑’이다. 효봉(1888~1966)은 선종의 맥을 이었다는 경허 선사와 그 제자 수월 스님과 거의 비슷한 동시대인으로서 실참실오로 깨달은 스님이다. 마흔 늦은 나이에 토굴 속 면벽을 깨뜨리고 나왔다. 세속 78세로 표충사 서래각에서 입적하였다. 경허 선사의 법통을 이은 수월 스님의 제자인 동인 스님이 표충사 재약산에서 토굴을 짓고 1970년까지 사셨다고 하니 한 번쯤 효봉과 동인은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효봉 스님의 무(無)는 효봉 자신이 말한 하처래 하처거(何處來 何處去)가 아니었을까.

거대한 암반으로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세운 마애부도마애탑은 세상의 온 허물을 혼자 뒤집어쓰고 가겠다는 은산철벽(銀山鐵壁) 투과의 확철대오를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엄청난 위엄이 서려 있다. 아마 그것은 효봉 선사가 한국 불교사에 끼친 족적이 이 태산만큼 크기 때문이리라.

내원암과 아치형 목교를 건너 진불암 왼쪽으로 빠지면 영남알프스의 용아산성이라 불리는 돈릿지가 나온다. 산을 탄다는 자라면 한 번쯤 결기를 가지고 오를 만한 암벽이다. 수미봉을 찍고 문수봉과 관음봉의 암릉도 험하기는 하나 이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왼쪽이 진불암이다. 이 진불암을 보고자 한다면 마천루처럼 하늘 높이 솟고 철옹성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암벽에 스스로 송연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겸손하게 옷깃을 여미지 않고서는 생쌀을 씹으며 한 철을 버텨 깨달은 해산 스님의 법거량을 알긴 어렵다. 그러나 스님의 도통이 한갓 인간세계를 꿰뚫었다고 하여 7000만년 전에 생긴 저 거대한 암벽에 어디 비교가 될 건가. 2000만년 동안 항하사 무량대수만큼 솟구치고 꺼지길 해서 만들어진 저 거대한 암벽은 머릴 조아려 받들어 모실 외경 그 자체다.

눈앞에 광활한 고원이 활찐 펼쳐졌다. 사자평이다. 지금은 영남알프스가 내놓은 억새밭으로서 관광지 중 으뜸이지만 일본 강점기 때는 소 방목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스키를 즐기기도 하였다. 해방 후 한둘 모인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어 살며 비록 분교이긴 하지만 그들 아이를 위한 ‘고사리 분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학교 학생들을 눈감고 그리면 교정에 넘치는 웃음소리가 하늘 높이 날고, 그런 아이들 머리꼭지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상상된다. 볕에 탄 얼굴이어도 밤 부엉이처럼 빛나는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 문도 없는 교문 밖을 와! 하고 나서는 그림, 칠판에 반듯하게 글씨를 써주던 선생님 따라 글씨를 괴발개발 따라 쓰던 아이들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잡힐 듯 선하다.

곧장 접어들면 수미봉(須彌峯·1108m)이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에 걸쳐있고, 밀양과 울주를 경계 짓는다. 영남 알프스 산군 중 가장 중앙에 있다고 해서 밀양은 영남알프스 주산을 재약산이라 부르지만, 울주군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삼남의 금강이라 불릴 만치 산경은 빼어나다. 부챗살에 한 개씩 놓인 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아우르고 있는 산이다. 그런데 이름을 두고 보면 특이하다. 불교적 색채를 띠었거나(천성산 영축산), 도교와 관계가 있거나(대운산 백운산), 왕업의 기틀을 마련했거나(금산 마이산 회문산 왕방산), 크고 험하다 할 때 붙이는 악(설악 월악 관악 모악 치악 황악) 중 하나로 지었거나. 이곳 영정 약수로 흥덕왕(829)의 셋째 왕자가 병이 낫자 약을 싣고 있는 산, 재약산(載藥山)이란 이름으로 지었다는 것이 이 절 재약산 내력이다. 어딘가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밀양 향토사학자 측은 ‘재약산은 정체가 불분명한 정동계(鄭東溪)가 영정사(靈井寺 1839년 이전 表忠寺의 옛 이름)에 주석했던 경일선사(敬一禪師)가 지은 ‘載岳山記’와 ‘載岳山靈井寺創建記’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을 재약산(載藥山)으로 위작했다고 하여 재약산은 없애야 할 거짓 산이라 주장한다.

재약산과 재악산의 다툼이요, 천황산과 재악산의 갈등이다. 본래부터 있었던 산이 서로 드잡이한 적은 없는데 산사(山史)를 찰찰히 살피길 원하는 산객은 무척 당혹스럽다.

김삼웅 저서 ‘약산 김원봉 평전’에서 약산(若山)은 조국 독립투쟁에 몸 바치려면 신체가 튼튼해야 한다는 일념에 유서 깊은 표충사 마을 뒷산인 재약산을 놀이터 삼아 석전놀이를 하며 성장했다(37쪽)는 글을 볼 때 먼 훗날 이념에 사로잡힌 증오가 사라지면 의열단장 약산의 얘기로 이 산은 또 하나의 스토리를 품을 것이다.

사자평 너머 저 멀리 오므린 부처님 손처럼 움푹 팬 곳이 간월재요, 신불산과 간월산이 호위하고 있는 그곳으로 배내봉까지 눈길이 이어진다. 재약산 마루금을 타고 문수봉에서 바라본 진불암은 산안개 속으로 언듯언듯 사라지길 반복한다. 안개란 그물로 던져도 걸리지 않을 산이다.

글·사진=백승휘 소설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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