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허만하 ‘야생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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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허만하 ‘야생의 꽃’
  • 경상일보
  • 승인 2025.08.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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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서 풀려난 소리는 비로소 아름답다.
숲 속에서 새의 지저귐 소리 들어보라.
물에 비친 가지 끝 섬세한 떨림을 보라.
의미는 스스로를 노출하지 않는다.
말이 되기 이전의 의미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꽃나무.
지는 꽃잎은 소리를 가지지 않는다.
침묵의 배후에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들녘을 보라.
사람의 시선이 머문 적 없는 야생의 꽃들이 있다.
흰 색 가운데서 흰 꽃잎은 희지 않은 것 가운데서
흰 것보다 본질적으로 희다.
꽃들은 정직하게 미래를 믿고 있다.
흰 꽃은 순결한 미래를 믿기 때문에 희다.
이름 없는 들꽃들이 저마다 다른 빛깔의 꽃가루를 만들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씨앗을 보라.
목숨은 역사 이후의 다른 별까지 날아간다.
지구가 사라진 뒤의 낯선 천체 위에서
꽃들은 바람도 없이 온몸을 흔들 것이다.
불멸의 언어처럼 인류를 추억할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날것의 아름다움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사람의 손이 가지 않은 자연 상태를 ‘야생’이라고 한다. 시에서는 사람의 ‘시선’조차 머물지 않은 곳이라 하니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상태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가. 사람은 자연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고 저렇다고 뭇 것들을 규정한다.

사람에게 이로운 것에는 더 높은, 그렇지 않은 것에는 더 낮은 가치를 매긴다. 그러니 의미에서 풀려난 소리와 꽃나무들은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말한다. 해석이 덧붙여지지 않은 순수하고 날것인 아름다움.

인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상징을 시인은 ‘흰 꽃’으로 표현한다. 흰 것보다 본질적으로 희다 하니 절대 순수의 경지일 것이다.

그럴 때 미래는 역시 무구한 얼굴로 꽃들을 맞는다. 그럴 때 생명은 인간의 역사와 지구라는 물리적 환경을 넘어서서 영속성을 갖는다.

인간은 사실 자연의 손님일 뿐이다. 손님은 언젠간 떠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간이 자연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자연,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불멸의 자연이 인간을 추억할 것이다. 콘크리트를 뚫고 씀바귀꽃이 피어나듯.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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