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 깃든 청정한 선비 숨결
오백년 도읍지를 괼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집(冶隱集)>

며칠 전 함양 개평마을의 일두 정여창 고택을 찾아 다녀왔다. ‘좌안동 우함양’의 내력은, 한양에서 내려다 봤을 때 낙동강을 중심으로 안동을 ‘좌안동’이라 부르고, 함양을 ‘우함양’이라 불러 전해온다. 훌륭한 학자들을 배출한 지역, 이러한 ‘우함양’의 기틀이 된 사람은 조선 성종 때 문신으로 안의 현감을 지던 일두(一蠹)정여창(鄭汝昌)선생이다.
3000평 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여러 채의 건물이 서 있어 양반 대가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춘 경남 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솟을대문에는 5개의 충신, 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었다. 함양 일두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186호다.
지리산을 병풍으로 기대고 개평마을의 더 넓은 들은 천석, 만석을 거둘 수 있는 들을 안고 있었다. 이만한 곡창지가 있으니 아흔 아홉간의 대저택을 운용하고 그에 딸린 아랫사람을 부리며 거두고 지냈지 않았겠는가 싶었다.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채, 아래채, 안 사랑채, 중 문간채, 광채, 사당 등의 건축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개평마을의 여러 고택을 둘러보는 중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는 야은 길재 선생의 시조를 읊조리게 되었다.
인걸은 간데 없다기보다는 당시 인물들이 살아간 흔적을 보며 전혀 간데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시 인물의 정신은 면면이 흐르고 있고 그 정신은 고택 곳곳에 배어 있기도 했다. 하물며 떠나고 없는 분의 정신을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그 정신을 기려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야은 길재 선생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린다. 고려 도읍지를 한 필의 말을 타고 돌아보며 망국의 한을 읊조린 시조이다.
야은 길재 선생도, 일두 정여창 선생도 가고 아니 오시지만 청정한 선비정신과 기개(氣槪)는 글 속에서도 살아가신 고택에서도 지리산의 푸른 정기, 그 울림은 가슴으로 번져온다. 학맥도 정신도 꽃이다.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과 눈을 말갛게 씻고 온 날이었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