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밭에 내리는 비는
하늘빛이에요
너른 모시잎 속에 스며들어
길쭉하게 자라난
결 고운 모싯대에 젖어들어요
하늘빛 말고는
안으로는 얻을 바가 없고
밖으로는 구할 것이 없지만
하늘빛으로 내린 비는 고스란히
그 꼿꼿한 모싯대를 감싸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싯대를 밑동에서 잘라
그 허리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지만
실은 그 껍질 속
하늘빛을 긁어모으는 거에요
보셔요, 햇살 속에 널린
태모시 빛깔에서 조금씩 빠져나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
하늘빛으로 변해버리고 있는 것을
하늘빛을 하늘로 보내고서야
태모시는 지상의 백모시가 되어가는 거지요
비움과 정화 끝에 드러나는 참모습

고운 모시 섬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겉껍질을 벗긴 모시를 태모시라고 하는데, 이 태모시를 물에 담가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쪼갠 모시올을 이어 실을 만든 다음 풀을 먹이는 모시매기 과정을 거친 뒤 베틀에 올려 모시를 짠다. 모시는 처음엔 담록색을 띠지만 표백하고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눈부신 백모시로 변한다.
모시가 자라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 가장 품질 좋은 모시는 한여름인 팔월 초에 수확한 것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모시는 흠뻑 비를 맞으면서도 허리를 곧추세우며 성장한다.
모시밭에 비가 내리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푸른 모시밭을 흡족하게 적시며 내리는 비.
시인은 모시밭에 내리는 비가 하늘빛이라 했다. 비를 맞아 싱싱하게 살아나는 모시풀을 생각하니 하늘빛은 가장 순수하고 원초적인 빛이다. 모시풀을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다.
하늘빛 비는 모시잎을 적시고 모싯대에 스며든다.
그리고 나중에 불필요한 것은 햇빛과 바람에 날려 보내고 가장 순수한 흰빛을 남긴다.
순수한 흰빛을 위해서는 처음에 받은 하늘빛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는 과정, 즉 껍질을 벗기는 아픔을 견디며 자신을 비우고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이 다르지 않고, 하늘의 것과 지상의 것이 다르지 않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