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늦게 잠이 깬 그를 향해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잘 주무셨습니까?”
“네. 그쪽도?”
여인은 대답 대신 그에게 옷을 내밀었다. 천동이 옷을 다 입자 세평이 기다린다는 말을 전했다. 그가 숙소를 나서자마자 세평이 보낸 왜병이 다가와 안내했다. 조선말을 모르는지 표정과 손짓으로 대충 의사표시를 하고는 앞장을 섰다. 세평의 군막은 그가 묵었던 곳과 지근거리라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 금방 도착했다.
“지난밤에는 잘 지냈나? 이제 너도 어엿한 장부가 된 게야. 그렇지 않은가?”
천동은 질문의 내용을 알아듣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은 듯 겨우 대답했다.
“네, 덕분에 잘 잤습니다.”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은 그 여인의 시중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잘 대해주거라.”
“네.”
“또한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에 네 식경씩 나에게 검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혼자서 배운 네 검술은 허점이 많아서 보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렇다고 너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하면 혼자서 익힌 실력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 일본 무사들과 견주어 보면 중간 정도는 된다고 본다. 지금 현재 너 정도의 검술을 지닌 자는 이 영내에서만도 오십 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배워라.”
“감사합니다.”
“네 입에서 끝내 사부라는 소리는 안 나오는구나. 그렇지만 강요하지는 않으마. 형님이라고 불러도 좋은데 너는 앞으로 나를 뭐라고 부를 생각이냐?”
“감히 제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허락하신다면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라. 그럼 너는 오늘 이후로 내 아우니라. 알겠느냐?”
“네, 형님.”
천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군영 내에 조선 여인이 있습니까?”
“그걸 왜 묻는 것이냐?”
“제가 아는 달래라는 아이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갔습니다. 그 애의 소식이 궁금한데 알 수가 없습니다.”
“네가 좋아했던 아이였던 게로구나.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 잊거라. 어차피 전쟁이란 그런 것이다. 전쟁포로도 생기고, 승전국을 위한 노예도 생기게 마련이다. 잡혀간 조선의 여인들이라면 아마도 상당수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무라이 계급의 잠자리 시중을 드는 몸종으로 바쳐졌을 것이다.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잡혀간 여자아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네가 무엇을 행동으로 하고 싶으면 그만한 힘을 우선 길러야 한다. 지금은 오로지 그것만 생각해라.”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