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3장 /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 군기(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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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군주의 배신 - 3장 /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 군기(38)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5.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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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울산 무룡산과 주변 일대에서는 왜군과 의병 등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장편소설 <군주의 배신>의 주 배경이 되고 있는 무룡산의 일출. 울산시 제공

신부가 뭔가 천동에게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전쟁은 목적이 아무리 선해도 방법이 너무 폭력적이다. 천동은 세상을 구원하겠다면서 구원의 대상인 사람을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서 낯선 타국으로 보내는 저들의 잔혹성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쟁 초기에 조선의 백성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병들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고 마치 해방군인 양 대했다. 노비들은 왜병들을 열렬히 환영하기까지 했다.

의병으로 나선 노비들은 그들이 원해서 왜병들과 싸운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주인인 양반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살기 위해서 무조건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왜병들은 전쟁과는 무관한 백성들을 죽이고 양식과 재물을 약탈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먹기 위해서 붙잡아갔는데 그 숫자가 십만 명을 넘고 있었다.

왜병들이 백성들에게 하는 짓을 보면서 일부이기는 하지만 노비와 천민들이 자발적으로 왜병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천동도 그래서 복면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여 왜병들의 목을 베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천동은 석문산성을 나서면서 다짐했던 말을 상기하며, 세르페데스 신부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대해서는 예나 아니오로 일관했다. 그런데도 세르페데스는 화내지 않고 미소까지 지어보이며 시종일관 친절하게 가르쳤다.

천동은 나이는 어리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화를 내야 할 상황에서조차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신부와 충돌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날 이후 하루의 일과는 매번 똑같이 진행되었다. 칠 주야가 두 번 반복되자 천동은 조금씩 신부가 하는 기리시탄교의 교리에 대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의문은 더욱 강하게 그를 짓눌렀다. 그때 하나코가 그를 생각의 늪에서 건져냈다.

“천동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신경 쓸 거 없소. 그저 나 혼자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벌써 자시는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만 주무셔야지요.”

“알겠소. 그대도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이만 자시오.”

“네.”

오늘도 천동은 하나코가 잠든 모습을 보면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검술수련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교리적인 문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세르페데스 신부는 칠 주야 후에 영세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 받아야 하는 것인지에 판단이 아직도 서지 않는다. 그저 나쁘지 않다면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어서 그냥 있는 것뿐이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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