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가 살던 곳에서 인간답게 죽는 게 소원이야.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
이 말에는 부모 세대가 바라는 마지막 소망과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동시에 담겨 있다.
울산의 고령 인구는 2025년 8월 기준 전체 인구의 18.1%를 넘어섰고, 일부 군·구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노인 열 명 중 아홉은 요양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답한다. 건강이 악화돼도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집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순간 집으로 돌아오기가 어려운 구조다. 단절된 서비스와 의료·요양 제도의 벽이 정든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만든다. 요양시설에 들어간 후에도 높은 간병비와 이용료는 부모는 미안함을, 자식은 버거움을 짊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이제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서야 한다.
내년 3월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돌봄통합법이 시행된다. 돌봄통합법이 시행되면 우리의 일상도 달라진다. 아프거나 몸이 불편해져도 병원과 요양원으로 바로 가는 대신, 동네 돌봄 코디네이터에게 상담을 받고 집수리·간호·요양·식사 지원 등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받을 수 있다. 홀로 사는 노인은 긴급 상황 시 지역 돌봄망을 통해 신속히 지원받고, 치매 노인은 재가 서비스를 활용해 익숙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다. 병원 퇴원 후에도 곧바로 요양시설로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이어지는 돌봄으로 회복을 도울 수 있다. 즉, 돌봄이 끊어지지 않고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울산이 준비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행정복지센터와 공공시설을 생활밀착형 돌봄 거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방문 요양, 주·야간 보호, 단기·긴급 돌봄 같은 재가 서비스를 강화해 집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경제 조직과 협력해 돌봄을 공동체의 과제로 만들고 돌봄 노동을 정당하게 인정·보상해야 한다. 넷째, 케어매니저를 비롯한 의사,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배치해 의료·복지·요양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에 다가오는 9월30일 울산시민홀에서는 ‘2026년 돌봄통합지원법 시행, 울산시의 준비와 과제’라는 주제로 ‘울산형 통합돌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린다. 시의회 손명희 의원실과 함께만드는마을사회적협동조합 부설 삶과그린연구소 공동주관으로, 행정·의료·복지 전문가와 시민이 함께 울산의 돌봄 미래를 논의할 예정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돌봄을 받는 존재가 된다. 누군가는 병원 침대가 아니라 익숙한 집에서, 낯선 시설이 아니라 정든 동네와 이웃 곁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돌봄은 소수가 아닌 모두의 미래이며, 도시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울산이 ‘돌봄 공동체 도시’로 거듭난다면, “나는 내가 살던 곳에서 인간답게 죽는 게 소원이야.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라는 말은 더 이상 안타까운 고백이 아니라, 사회가 보장하는 당연한 권리이자 약속이 될 것이다.
김민경 삶과그린연구소장 사회복지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