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교원의 절반가량이 여전히 교단에 서 있다는 사실은 교육현장의 윤리기준에 의아심이 들게 한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실효하고 교육청의 ‘직위해제’ 권한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학생 보호보다 교원 신분 보장이 우선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교육부가 제출한 국감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성범죄 혐의로 수사받은 전국 교직원은 655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289명(44%)은 직위해제 없이 계속 근무 중이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전체 수사 대상 76명 중 43명, 57%가 교단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성범죄 피의자가 절반 이상 교실에 있는 셈이다.
해마다 성범죄 혐의로 수사받는 교원 수는 100명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직위해제율은 2021년 73%에서 2022~2023년 54%, 2024년 50%, 올해는 43%까지 떨어졌다. 피의자는 늘고, 조치는 줄었다. 교육당국이 사건을 ‘형사절차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사안’으로 치부한 결과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최근 5년간 평균 직위해제율이 가장 낮은 곳은 부산(21%)으로, 전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북(27%), 인천(32%), 울산(33%) 역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울산에서는 여학생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교사가 여전히 수업을 진행하고 있고, 부산에서는 불법 촬영 혐의로 입건된 교원이 교단을 지키고 있어 학부모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 제44조의2는 성범죄를 포함한 중대한 비위로 수사받는 교원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직위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이 조치는 징계가 아니라, 피해자와 피의자를 분리해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장치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임의 규정 탓에 교육청의 자의적 해석이 개입되고,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미루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전문가들은 직위해제를 ‘가해자 처벌’이 아닌 ‘학생 보호’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내세워 적극적 조치를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 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야말로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사후대응에 머물러선 안된다. 성범죄 혐의가 제기되는 즉시 피해자 중심의 원칙을 적용하고, 전국 시도교육청에는 직위해제를 ‘선(先)조치·후(後)검증’의 원칙으로 정착시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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