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철은 몇 차례 유배를 갔었는데 그는 그때마다 주상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미인곡’에 이어 ‘속미인곡’까지 지어 바치며 자신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그가 지어 올린 가사의 영향으로 그는 번번이 유배지에서 풀려났었고, 마침내 기회가 되자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하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고 두 손에 엄청난 피를 묻혔던 것이다.
동해가 보이는 무룡산 정상 부근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혼자 외롭게 술을 마시던 천동은 문득 1593년 겨울에 유배지인 강화도에서 술을 마시다 죽은 송강 정철이 생각났다. 명나라에까지 문장이 알려진 조선의 대문호 정철이 왜 악귀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까? 그의 ‘장진주사’는 당송대의 이백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명시(名詩)인데,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시를 지은 그가 어떤 마음이었기에 수십 명도 아니고 수백 명도 아닌 일천여 명의 목숨을 빼앗은 것인가?
정여립이 서인을 배신하고 동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리도 그를 화나게 한 것일까? 그는 왜 오래된 벗 서애 류성룡까지 죽이려고 한 것일까? 서애 류성룡은 왜 자신까지 정치적 희생물로 삼으려고 한 정철의 목숨을 구명한 것일까? 천동은 거푸 술 석 잔을 들이키고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송강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나직이 읊조렸다.
ᄒᆞᆫ잔 먹새 그려
또 ᄒᆞᆫ잔 먹새 그려
곳(꽃) 것거(꺾어) 산(算) 노코(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우해(위에) 거적 더퍼(덮어)
주리혀(졸라)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 곱게 꾸민 상여)의 만인이
우레(울며) 너나(따라와)
어욱새(억새) 속새 덥가나무(떡갈나무)
백양(白楊: 버드나무) 수페(숲에)
가기곳 가면(가기만 하면)
누른(누런) 해 흰 ● ●●비(가랑비) 굴근(함박) 눈
쇼쇼리(매서운) ●람 불제 뉘 한 잔 먹자 할고
하믈며 무덤 우해(위에)
잔나비(원숭이) ●람(휘파람) 불 제
뉘우●●(뉘우친들) 엇더리(무슨 소용 있겠는가)
눈물을 흘리며 장진주사를 읊어대던 천동은 취기로 인한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위 위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다. 그는 꿈속에서라도 송강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었을 것이다.
‘대감, 어찌하여 그리하셨습니까?’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