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눌 장군이 이번에는 아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도 천동은 눈치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대장군은 맹자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맹자라…, 현자라고 할 수 있지. 나도 맹자는 읽어 보았네.”
“맹자왈(孟子曰), 민(民)이 위귀(爲貴)하고, 사직(社稷)이 차지(次之)하고, 군(君)이 위경(爲輕)이라고 했습니다. 장군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자네, 지금 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오라 대장군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여쭙는 것입니다.”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는 것은 세종대왕께서도 강조하신 것이네. 새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세종께서는 심지어 천민까지도 하늘이 낸 사람이라고 하셨지.”
“지금 한양의 주상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소인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까?”
“이 사람아, 나도 유학을 배운 양반 사대부야. 차라리 나를 욕하게.”
“주상이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의심하고 김덕령 장군이 옥사하자, 권율 장군은 살아남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주상에게 충성을 확인하는 봉서를 올린다고 하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권 장군님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장군도 그러하시지요?”
양반인 그가 대답하기에 곤란한 질문을 하자 장군은 입을 닫아 버렸다.
“….”
천사장은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인은 아직도 머릿속이 많이 혼란합니다.”
잠시 숨을 고른 천사장 이눌은 마음을 추스르고 대화를 이어갔다.
“무룡산에서 한 사흘만 해 뜨는 시각에 동해바다를 바라보면 머리가 맑아질 거야. 내가 왜 이 달령으로 진을 옮겼는지 아는가? 왜구로 변한 왜병들의 노략질을 막는 것이 첫째의 목적이기는 하지만 난 이 무룡산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좋아. 무룡산 정상에서 보는 것은 더 아름답지. 거기서 바다 쪽을 보면 바다뿐만이 아니라 산세도 기가 막히게 좋아. 그건 자네가 더 잘 알지 않은가?”
“당분간 저도 무룡산에 있는 거처에서 지내야 할까 봅니다. 장군의 말씀대로 매일 아침 해 뜨는 시각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며 마음을 정리해 볼 요량입니다.”
“잘 생각했네. 거기라면 여기서 가까우니 매일 놀러 오게.”
“장군의 말씀은 꼭 유람 나온 사람 같습니다.”
“사실은 수삼 일 내로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러 이 달령 고개를 넘을 거라는 첩보를 들었어. 그래서 진(陣)도 여기로 옮긴 것이지. 군사들의 숫자가 적어서 자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 싸움에 단련된 왜구들이 야밤에 기습을 하면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거야. 그게 제일 걱정이야.”
글 : 지선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