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학교에서 진로 멘토링을 진행하며 적지 않은 고민을 안고 돌아왔다. 다양한 직업과 산업 현장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여러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이제 AI가 다 해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아직 진로를 탐색하는 단계의 학생들이기에 다소 단순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개인의 미성숙함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신호였다. 이는 조기 교육 단계에서 형성된 기술 인식이 결국 산업 현장과 정책 방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은 이미 산업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공장 확산과 산업 디지털 전환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수년간 수만 개에 이르는 자동화 설비가 제조 현장에 도입됐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사람의 역할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동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현장은 더 복잡해지고, 사고 발생 시 파급력 또한 커진다.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 관련 기관의 사고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대형 산업사고의 상당수는 AI나 자동화 시스템 자체의 오류라기보다 전기·계장·제어 과정에서 발생한 작은 이상 신호를 초기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설비의 미세한 소음 변화, 전류와 압력의 불안정, 제어 로직의 오류 등은 여전히 현장 경험과 감각을 갖춘 기술자의 판단에 의존한다.
울산의 산업 구조는 이러한 특성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낸다. 고위험 공정이 밀집된 석유화학 단지와 대형 플랜트 산업에서는 단 한 번의 판단 오류가 대형 인명·재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자동화 설비 도입 속도에 비해 이를 운용·관리할 전기·자동화·설비 유지보수 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러 산업계 조사에서도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 이후에도 관련 기술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 비율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교육의 역할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AI 활용 능력과 디지털 역량을 강조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시대적 요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문제는 기술을 ‘이해하는 교육’보다 ‘의존하는 교육’이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 해결 과정을 스스로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경험이 줄어들수록,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판단력과 책임감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손으로 익히고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기술 교육 영역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큰 위험 요소가 된다.
AI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현장 경험의 축소라는 문제는 단순히 교육 현장의 선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정책적으로는 디지털 역량과 AI 활용을 강조하면서도, 그 기초가 되는 기술 이해와 현장 경험에 대한 투자와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여러 직업교육·산업정책 보고서에서도 디지털 전환 정책이 장비 도입 중심으로 설계돼 있으며, 이를 운용할 인력에 대한 체계적인 양성 전략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사람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데, 정책과 교육은 아직 이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능사의 역할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인력이 아니라, 자동화 설비를 이해하고 시스템 오류를 진단하며 사고를 예방하는 현장 전문가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격증 취득 중심의 교육을 넘어, 실제 산업 설비와 연계된 실습, 문제 해결 중심의 훈련, 안전과 자동화를 결합한 교육이 필요하다. 설비 투자 대비 인력 양성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산업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조기 교육 단계부터 기술의 한계와 인간의 역할을 함께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동화는 효율이 아닌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다. 기능사는 과거의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AI 시대에도 산업 현장을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판으로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기웅 한국폴리텍대학 석유화학공정기술 교육원 석유화학공정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