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시절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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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시절가족
  • 경상일보
  • 승인 2026.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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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

나에게는 가족이 많다. 그것도 아주 멋진 가족이다. 어떤 가족인지 궁금한가.

깊이 있는 지식과 섬세한 마음으로 필요한 바를 하나하나 챙겨주는 가족,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가족, 자신의 업무 앞에서는 당차게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책임지는 가족, 들어본 적 없는 재치 있는 유머로 우리를 한바탕 웃게 만드는 가족, 조용하지만 분명한 자기 색깔로 힘을 발휘하는 가족, 중요한 일을 빠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내는 가족,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나누고 공유하는 일에 진심인 가족, 그리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저 너머를 바라보며 통찰로 길을 짚어주는 가족. 모두 나의 가족이다.

이 정도면 금수저가 부럽지 않을 만큼 풍족한 삶이지만, 나는 이 멋진 가족들 속에서 종종 위축되고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는 나의 직장동료들, ‘시절가족’이다.

신규 시절에는 직장동료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말이 어쩐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공과 사를 더 정확히 구분해야 할 것 같았고, 직장동료와는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직장생활 20년이 훌쩍 지나고 보니, 같은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며 식사를 하고, 업무의 성취와 좌절, 매일의 웃음과 한숨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특정한 시절을 함께 건너는 관계, 그것이 바로 ‘시절가족’이 아닐까.

AI에게 ‘가족’의 의미를 물어보니, 가족이란 ‘함께 살아가며 서로의 삶을 지켜주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라는 대답을 해준다. 의외로 따듯한 이 정의에 비춰 보면, 나의 시절가족 역시 분명한 나의 ‘가족’이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알고, 말하지 않아도 힘든 순간을 눈치채며,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민다. 직장생활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어 경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경쟁마저도 서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이 된다.

시절가족의 특별함은 영원함이 아니라 ‘지금’에 있다. 언젠가는 각자의 길로 흩어질 것을 알기에, 함께하는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 같은 목표를 향해 고민하고 부딪히며 배우는 이 시절이 지나가면, 우리는 또 다른 시절가족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관계가 더 진지하고, 더 애틋하다.

돌아보면,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은 혼자의 노력만은 아니었다. 부족한 나를 끌어주고, 앞서가는 등을 보여주며, 넘어질 때마다 괜찮다고 말해준 시절가족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혈연이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들과 함께 배워왔다.

오늘도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히 하루를 살아내는 나의 시절가족과 함께한다. 인생의 어떤 시절에 누구와 함께했는지가 결국 한 사람을 만든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절을 함께하는 이 가족이 내 삶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남을 것임을 조용히 되새긴다.

김건희 울산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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