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68)]송이버섯의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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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68)]송이버섯의 해학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09.1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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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가을날/ 산림조합 광장에서/ 버섯시장이 열리고 있다./ 버섯 중 가장 인기 있는 녀석은,/ 고추를 드러내고/ 스트립쇼를 벌이는 송이버섯이다./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들이/ 송이버섯 앞에서 침을 흘리고 있다.…

‘버섯시장-가을의 미각’ 중에서(김시종)



송이는 소나무 송(松)에 버섯 이(茸) 또는 목이버섯 이()를 쓴다. 소나무 버섯이라는 뜻이다.

송이는 소나무 중에서도 붉은 색을 띤 적송(赤松) 잔뿌리에서 주로 생긴다. 적송은 화강암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된 마사토 비슷한 흙에서 잘 자란다. 송이도 그런 곳을 좋아한다. 항간에 ‘송이는 암소나무 밑에서 잘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다 한 나무에 있다. 송이의 생김새가 남자의 생식기와 닮아 그런 말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 면에서 김시종 시인의 시 ‘버섯시장­가을의 미각’은 ‘미소’라는 양념을 고루 뿌린 가을의 해학이다. ‘고추를 드러내고 스트립쇼를 벌이는 송이버섯’. 이 대목에서 필자도 헤픈 웃음을 털어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송이를 즐겨왔다. 고려 문인 이인로가 지은 <파한집(破閑集)>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마침 송지(松芝·송이)를 바치는 이가 있어, 어젯밤 좋은 음식 징조가 있더니 오늘 아침 기이한 향기를 맡네. 원래 작은 언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진대, 오히려 복령의 향기를 지녔네.”

목은 이색은 <동국이상국집>에서 “예전 사람들은 신선이 되겠다며 불로초를 찾아다녔는데,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송이버섯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또 서거정은 문집 <사가집(四佳集)>에서 ‘팔월(음력)이면 버섯 꽃이 눈처럼 환하게 피어라, 씹노라면 좋은 맛이 담박하고도 농후하네’라고 노래했다.

 


버섯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一)능이, 이(二)표고, 삼(三)송이’라는 말이 퍼져 있다. 혹자는 줄여서 ‘일능이송삼표’라고도 한다. 그러나 능이는 실록이나 문집, 동의보감은 물론 백과사전, 요리서에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누군가 능이를 팔아먹기 위해 고안한 문구로 추측될 뿐이다.

송이의 1등품은 갓이 거의 펴지지 않고 자루가 굵고 뭉툭하며 살이 두꺼운 것을 최고로 친다. 30% 이내 펴진 것은 2등품, 30% 이상 펴지면 3등품이다. 먹을 때는 소금으로 간을 맞춰 세로로 찢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 태풍도 지나가고 바야흐로 송이의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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