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이런 저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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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이런 저런 생각
  • 경상일보
  • 승인 2020.09.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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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옥 호계고 교사

태풍 마이삭에 교실 바닥이 물로 흥건해져 있었다. 등교시간이 늦추어진 덕분에 청소할 시간이 생겼다. 한 시간 넘게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순한 아이가 왔다. 함께 하자 했다.

한 삼십 분 쯤 지나니 둘이 더 왔다. 방바닥처럼 말끔해졌다. “아이 이럴 거 같으면 학교는 왜 오랬어!” 화장실에서 썼던 걸레를 빨고 있는데, 뒤늦게 함께했던 아이가 내뱉은 볼멘소리다.

그 말을 마음에 주워 담았다. “태풍에 다들 무사하제? 학교 왔더니 교실 바닥에 빗물이 흥건하더라. 비설거지 한다고 일찍 온 몇이 고생했다. 그보다 더 일찍 온 혜은이는 더했고. 바닥 한 번 훑어 봐라, 머리카락 한 올 없이 말끔 하제. 수고한 친구들에게 박수 한 번 치자.” 박수 소리에 귀가 시원하고 땀이 가시는 듯하다. “잔소리 같지만 한 마디만 더 할게. 이 교실 주인은 누고?” “우리들이지요.” “그렇제, 주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노?” “…….” “화장실 청소하고, 비설거지하는 사람이다. 오늘 일찍 와서 바닥 청소했다고, 대놓고 툴툴 거리는 녀석 있더라. 내 딱 기억 한다~!” 기어코 그렇게 마음에 두었던 말을 그 아이에게 돌려주었다. 이틀이 지났을까, 물기가 마르기도 전에 더 강력하다는 태풍 하이선이 올라온다 했다.

심한 시간때가 등교 시간 전후라 전 학년을 온라인 수업으로 바꾸고 교사들은 재택근무를 했다. 그 다음날 교실바닥은 누군가의 손길로 물기 없이 말끔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곳 저 곳을 살펴보았다. 수업교구가 들어 있던 삼단 서랍장에 물이 들어차 학습도구들이 퉁퉁 불어있다. 이 일을 어째.

올 해는 장마가 유난하여 가을이 제 때에 제 모습으로 오려나했다. 요즘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찹찹한 아침저녁 공기에 정신이 파릇 날이 선다. 초록이 사라져가는 공간에는 풀벌레 소리 풍성하다. 그 소리로만 쨍하다. 거짓말 같은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아이들 소리로 가득 들어찬 구월의 교실 복도 같다. 깡총하게 자른 단발머리가 볕에 찰랑인다. 코로나19 속에 숨도 자유롭지 못한 하루하루를 여전히 살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어김없이 자라고 있다. 아직 못 다한 일은 어찌해야 하나. 끝내기도 전에 저물지나 않을지. 이토록 무심하다니. 내 처지가 그렇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그 어느 사람의 묘비명처럼.

2학기에 한 두어 달 병가를 내야하나 했다. 꼭 그럴 줄 알고 이것저것 정리를 했다. 여름방학 하는 날 학급 임원 셋을 불러 미리 당부도 해 두었다. 두어 달 병 속에서 푹 쉬다 일어난다 생각하니 일상의 긴장에서 풀려나 설레기까지 했다. 꼭 쉬어야겠다는 이상한 결심도 생긴다. 쉴 생각에 몇 날 며칠은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온갖 생각도 많아졌다가 어느 경우엔 삶의 어느 중요한 지점에 이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을 마음으로 자세히 느끼기도 했다.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위해 이박 삼일 환자복을 입고 누웠다. 놓아주어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미처 못 끝낼 일들이 찝찝하다. 어떤 일들을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될 동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구월을 맞았다. 남은 날을 생각하니 벌써 애틋하다. 손가락으로 물을 움켜쥐려는 것 같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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