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69)]석류, 그 알알이 붉은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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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69)]석류, 그 알알이 붉은 뜻은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09.21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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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율곡은 세살 때 석류(石榴)가 어떻게 생겼는냐는 외할머니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석류 껍질 속엔 부서진 붉은 구슬이 있네(石榴皮裏碎紅珠)

율곡이 인용했던 고시(古詩)의 원문은 오죽헌에 아직도 새겨져 있다. ‘부서진 붉은 구슬’이라는 표현이 세 살배기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니 가히 천재가 아닐 수 없다. 보통 석류는 9~10월에 익는다. 그러므로 외할머니가 율곡에게 이 질문을 던진 것도 이맘 때가 아닐까.

석류는 한 때 TV광고를 타면서 유명해졌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광고 카피에 인기 연예인 이준기까지 나오자 석류는 폭발적인 매출고를 기록했다. 이처럼 석류는 여성들의 미모와 건강에 직결돼 있다. 실제 석류는 중년 여성들의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키는 에스트로겐이 많이 들어 있어 아주 좋은 과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엘라그산 성분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의 절세미인 양귀비는 과일 중에서도 유독 석류를 사랑했다. 양귀비와 당 현종의 로맨스가 펼쳐졌던 중국 서안 화청지(華淸池)에는 지금도 석류나무가 무성하다. 현종은 양귀비를 위해 화청지 곳곳에 석류나무를 심고, 손수 석류의 껍질을 벗겨 한 알씩 양귀비에게 먹여줬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조시인 조운은 석류를 보고 ‘빠개 젖힌 이 가슴’이라고 썼다. 얼굴은 투박하고 못생겼지만 이 빠개 젖힌 가슴은 알알이 보석이다. 당대 최고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석류’ 전문(조운 1900~1956)

페르시아 지역인 고대 이란에 파르티아 왕국이 있었다. 당시 한나라에서는 안석국(安石國)이라 불렀다. 사람들은 여기서 온 혹(瘤)처럼 생긴 과일을 안석류(安石瘤)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그 이름은 안석류(安石榴)가 되고 석류가 됐다. 송나라 때 왕안석은 홍일점(紅一點)의 어원이 되는 시를 지었다. 만록총중 홍일점(萬綠叢中 紅一點) 동인춘색 불수다(動人春色 不須多). 해석하면 ‘푸른 잎들에 둘러싸여 홀로 붉게 핀 한송이, 봄 색깔은 굳이 많지 않아도 되네’정도 되겠다.

여름철 강렬한 햇볕을 한껏 품었던 석류는 10월이 되면 겉껍질이 터지며 붉은 속살을 드러낸다. 만록총중 홍일점이 바야흐로 빠개 젖힌 가슴으로 폭발하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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