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을/그는 몰랐다. ‘갈대’ 전문(신경림)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절기 한로(寒露)가 지난 8일었다. 한로 무렵이 되면 귀뚜라미를 비롯한 풀벌레들이 생기를 잃는다. 울음이 약해지니 계절이 더 처량하게 다가온다. 산다는 것은 조용히 울고 있는 것!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팡세>에서 말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이 갈대를 흔들고 있다.
갈대와 억새는 모습이 비슷해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한다. 이들은 같은 볏과의 한해살이풀이지만 자생지역과 색깔, 키 등이 서로 다르다. 억새는 주로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냇가나 습지, 물가에 무리를 이뤄 자란다. 은빛이나 흰빛을 띠는 억새와 달리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띤다. 또 억새의 키는 1~2m에 그치지만 갈대는 2~3m에 이르러 분명히 구분된다.

갈대가 군락을 이루는 곳을 찾으라면 단연 순천만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순천만은 세계 5대 연안(沿岸) 습지로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는 690만평의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 억새 군락지로는 영남알프스 일대를 첫번째로 꼽는다. 간월산 간월재와 신불산 신불재, 영축산 단조성터 등에는 수백만평의 억새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갈대나 억새나 바람을 맞고 울음을 우는 것은 다 한가지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는 말아라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 갈대의 순정…. 박일남은 1966년 ‘갈대의 순정’이라는 데뷔곡으로 3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 출렁 목이 맵니다…. 1936년 발표된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은 가을남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으악새’는 억새의 경기도 방언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억새처럼 우리의 인생도 세파(世波)에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바람에 꺾이지는 않는다. 다만 흔들릴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속으로 울 뿐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