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초입에 들어서면 낙엽들이 비 오듯 우수수 떨어진다.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단어인 같다.
그런데 가을 꽃과 잎들이 지고 있는 들판에 나가보면 아직도 피고 있는 꽃들이 있다. 바로 도깨비바늘꽃이다. 도깨비바늘은 꽃이 지고난 뒤에 열리는 가늘고 긴 열매를 말한다. 흡사 바늘처럼 생겼다고 해서 도깨비바늘로 불린다. 울산 사람들은 도깨비바늘 대신 도둑놈, 도깨비풀로 더 많이 부른다. 한방에서는 귀침초(鬼針草)라고 한다.
‘울산도깨비바늘’은 울산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외래식물이며, 한해살이풀이다. 울산도깨비바늘은 도깨비바늘과 비교할 때, 두상꽃차례(머리 모양을 이루어 한 송이처럼 보이는 것을 말함)에다가 관모양꽃으로 되어 있고 총포조각이 주걱 모양인 점이 특징이다.
그놈 참 이름 한번 고약하다/ 하 많은 이름 중 도깨비바늘이라니/ 따끔한 요술이라도 부리나 보다/ 산길을 지나다/ 우연히 스쳤을 뿐인데 / 나도 모르게 후드득 달라붙어/ 콕콕 찌르고 잘 떼지지도 않는다/ 그리움 이란 게 꼭 이놈 닮았다. ‘도깨비바늘’ 전문(류인순)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니 씨를 퍼뜨리는 기막한 방법을 찾아낸다.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해 낸 식물종은 살아남아 종을 유지하고 있다.
도깨비바늘의 꽃은 노란색으로 작고 앙증맞게 달리는데 다른 꽃들보다 그다지 관심을 못 받고 지나간다. 하지만 가을에 길이 1~2㎝의 열매를 맺게 되면 무서운 존재로 변한다. 가을 분위기에 취해 한껏 들판을 걷다보면 문득 논두렁 밭두렁 전체가 도깨비바늘 투성이임을 알게 된다. 심지어 옷을 뚫고 들어와 살갗을 찔러대기도 한다. 안방까지 몰래 들어온 이 도깨비바늘은 그야말로 ‘도둑놈’이라고 할만 하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매창(梅窓, 1573~1610)은 조선 시대의 기생으로 이귀, 허균 등의 선비들과 교류했다. 황진이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名妓)로 꼽힌다. 오는 7일은 입동(立冬). 배꽃잎이 비처럼 날릴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큰 길에는 낙엽들이 나뒹굴고 있다. 지천에 돋아난 도깨비바늘이 지나간 추억을 콕콕 찌르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