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76)]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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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176)]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11.09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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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물이 얼기 시작하고 땅이 부풀어 올라 서걱대는 입동(立冬). 지난 7일은 ‘겨울이 일어선다’는 입동이었다. 한 차례 광풍이 몰아치면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흩날리는 계절, 외투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파고 든다. 이 맘때가 되면 아이들은 엄마의 품속으로 파고 들고, 나이 든 사람들은 돌아가신 부모의 추억 속으로 파고 든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다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부모’는 김소월이 지은 시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사람들은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불서(佛書) <전등록>에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낙엽은 원래 뿌리에서 생겨난 것이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깊고 오묘한 의미를 아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다만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뜻을 알게 될 것을.

 

‘부모’는 1968년 가수 유주용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작곡은 코미디언 서영춘의 형인 서영은이 했다. 어렸을 적 필자는 ‘부모’라는 노래를 알지 못했다. 대신 5월이 되면 ‘어머니의 마음’ ‘어머님 은혜’는 애국가처럼 외웠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1939년 양주동 박사가 지은 것이다. 이어 1948년에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하나 있지~’로 시작되는 동시작가 윤춘병의 ‘어머님 은혜’가 나왔다.

김소월의 시는 대중가요로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 ‘진달래꽃’ ‘부모’ ‘엄마냐 누나야’ ‘못잊어’ ‘개여울’ ‘산유화’ ‘먼후일’ ‘실버들’ ‘초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등등. 이 중에서도 이맘 때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노래가 바로 ‘부모’다. 꽃피는 5월의 주제가가 ‘어머니의 마음’과 ‘어머님 은혜’라면 낙엽 떨어지는 11월의 주제곡을 단연 ‘부모’다.

화려한 단풍이 오히려 쓸쓸한 계절, 늙은 어머니를 아랫목에 모셔다가 ‘나는 어쩌다 생겨나왔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코로나가 휩쓸고 가는 자리에 나무의 탄식이 깊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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